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복 Apr 26. 2019

#부부가 된다는 것

 CBS라디오 한동준의 FM 팝스에 방송된 글 이야기




(방송으로 나온 사연)(2019.4.19일)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몹시 놀랬다.
마흔이 넘고 나서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모처럼 새로운 소식이었다. 

주말 결혼식장 가는 길, 나뿐 아니라 남편도 아이들도 같이 가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 친구를 만난 건 대학교 1학년 때였고, 지금 나이 마흔에 딱 절반인 스무해였다.
흐릿한 시간이 될 법도 한데 너무도 선명한 기억들이 창문 밖으로 스쳐가는 자동차의 속도 사이로 펼쳐졌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엄마의 친구 결혼식장에 간다고 하니깐 질문들이 쏟아졌다. 

 "엄마 친구는 왜 이렇게 늦게 결혼해요?"
 "엄마 아빠는 어떻게 결혼했어요?"
 "결혼할 사람을 어떻게 알아봐요?"
 "고백은 누가 먼저 했어요?"

결혼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을 것 같은 9살, 11살 딸에게서 이런 질문들이 쏟아지자 무척 뜻밖이어서 웃음이 났다. 
 "몰라도 돼"라고 하기에 몹시 듣고 싶다는 아이들의 궁금증은 목 끝까지 차올라 보였다. 
이참에 엄마 아빠의 결혼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언젠가 부모님의 결혼 이야기들을 들었던 것들이 기분 좋게 떠올랐으니깐 말이다.

 "아빠랑 엄마는 못 만날 수도 있었어. 엄마가 아빠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적이 있었거든..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너희들은 지금 없었겠다..."라고 말하자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의 표정에는 웃음 넘어 다행스럽다며 이야기를 덧붙여 나갔다. 
 "그래.. 그랬지.. 딱 11년 전이구나.."

소개로 만난 남편이 나와 띠동갑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연애에서 결혼까지 가는 길에 우여곡절의 시간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이렇게 딸을 두 명이나 낳고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으로 부부가 되어 살아갈 줄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은 알았을까?"
 "헤어짐으로 평생 다시 만날 수 없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날들을 같이 하게 될 줄 알았을까?"
한파로 추위가 절정에 있을 때 무작정 나의 회사 앞으로 찾아와 기다리겠다는 문자를 받고서 얼마나 고민을 했던 지 그날도 또한 기억났다. 
계속 기다릴 것만 같아서, 추우니깐 돌아가라는 말을 하려고 나갔는데 그것 때문에 남편과 다시 말을 나누게 되었고 오해했던 것들도 풀어지고, 다시 만나게 된 이후로부터 3개월 조금 지난 이후로 우리들은 부부가 되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인연이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이럴 때 쓰는 말 같았다. 

아이들에게 구구절절하게 다 말할 수는 없었지만, 프러포즈하던 날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맛있는 밥을 먹고 나서 어디를 가자고 했던 그곳에 초를 가지고 하트를 만들어 놓은 다음에 아빠가 엄마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노라고 이야기해줬다. 그러자 아이들은 자신들이 프러포즈를 받은 것처럼 환호하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빠가 노래를 하다가 가사를 까먹어서 웃겼지만, 노래를 다 부르고 엄마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결혼하자고 했던 말을 이어갔다. "엄마는 아빠의 진심을 느꼈어. 그래서 결혼을 결심하게 된 거야. 엄마도 아빠가 좋았으니깐 결혼을 한 거지.."
나이도 모르고 소개받으러 나간 자리에 띠동갑이라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헤어졌었던 사람들이었음에도 다시 만나서 부부가 되었고 아이를 낳고 이렇게 무수한 추억들이 많은 사람들로 살아가는 것들이 마음속 일기장을 넘겨보는 것 같았다. 

친구의 결혼식장에 다다랐을 즈음 아이들에게는 엄마 아빠의 결혼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는지 결혼하길 잘했다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부부가 되기로 마음먹은 친구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스무 살에서 마흔이 된 기다린 길 속에서 우리들은 이렇게 저마다 이야기 한 보따리씩 안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들이 이어졌다. 
만나자 마자 이마에 부부라고 적혀 있지는 않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평생을 같이 하기로 마음먹은 날들의 순간을 생각하면 부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신기하고 처음을 상기시키는 소중한 병 속에 담긴 편지처럼 다가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 짜장면 아저씨께 온 문자메시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