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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Apr 03. 2022

#다행이라는 중간지점

#1

몇 주 전 하고 있던 것들을 정리하고 쉴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주 주말이었다. 

빵이 먹고 싶어서 한 입을 씹으려던 순간, 치아가 몹시 아팠다. 씹을 수가 없이 쑤시는 것이다. 

아침까지는 괜찮았는데 오후가 되니 갑자기 머리가 아플 정도로 치통이 온 것이다. 


그다음 날 문 열기가 무섭게 치과로 향했다. 

이것저것 치아 사진을 찍어보니 육안으로 보이지 않은 것이 치아 속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썩어있는 것이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 맞닿아있는 두 개가. 

간호사분은 내게 어떤 치료들을 할 것인지 설명을 자세히 해줬다. 그리고 얼마의 비용이 나올 지도.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너무 비싸서. 생각지도 못했던 지출이 나갈 수는 있겠으나, 그 순간 떠올랐던 것은 그동안 수고한 것들에 대한 대가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온라인 수없을 한다고 애를 쓰던 시간들이어서 몇 달 치의 노력들이 앉은자리에서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하필"이라는 단어가 마음속 사방을 누볐다. 아주 작고 작은 몸 한구석이 이토록 자신의 존재감을 갖고 있다니. 

치료를 시작했다. 


갈 적마다 입안을 마취하려고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입은 내 입이 아닌 것 같았다. 

턱뼈가 얼얼할 정도로 온갖 기구들이 치아를 훑고 지나갈 적마다 '난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것이지' 싶었다. 

거기다 어떤 날은 마취가 퍼져서 눈까지도 불편했다. 말을 하는 것도 볼 한쪽을 만지는 것도 내 몸 같지 않았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 마취가 풀렸을 때 살 것 같았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감싸 안았다. 

말을 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이것만도 어디야 싶었다. 



#2 엊그제 금요일이었다. 

학원 갔다고 돌아올 딸을 기다리고 저녁밥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집에 돌아온 딸이 울면서 들어왔다. 

절뚝절뚝. 계단을 헛디뎌서 발을 삐끗했다는 것이다. "아...." 

당장 다음 주 학교 갈 생각까지 더해져서 마음이 무거웠다. 얼음찜질을 해주고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주니 그제야 딸이 웃었다. 

다음 날 역시나 정형외과로 향했다. 검사를 받고 소견을 들으니 뼈가 부러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인대가 늘어난 것 같다고. 

뼈가 부러졌으면 한 달은 깁스를 해야 하지만, 일주일 정도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때도 역시 이 단어가 떠올랐다.

'다행이다' 

갈 때는 군데군데 업고 갔는데, 올 적에는 그래도 깁스 한 발로도 걷고 올 수 있어서 살 것 같았다. 뼈라도 금이 갔으면 어쩔 뻔했을까 아찔했다. 그래도 일주일이니 참 다행이지...



몇 주 사이에 몸을 통해 만난 단어들이란 감정과 생각을 누볐다. 

살면서 좋은 일과 안 좋은 일, 딱 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 떠올리게 되었다. 

"다행"이라는 중간 지점이 있다는 것. 

"하필"이라는 단어를 써서 이야기했을 때는 불행 쪽으로 기울었지만, "다행"을 꺼내었을 때는 안도감이 차올랐던 몇 주 사이. 

다행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서 검색하다가 생각의 자리가 확실히 옮겨지는 것만 같았다.

 "뜻밖에 일이 잘되어 운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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