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작가의 SNS에서 마주친 그림 한 점. 가을 들판에 서 있는 외로운 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었고, 그림 아래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오래, 바람을 견디는 존재입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마음 한가운데가 조용히 젖었다. 그리고 나는 인생 첫 그림을 샀다. 그림을 처음 걸던 날,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내 일상에는 아주 조용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변화는 내 공간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림 하나를 거니, 눈이 닿는 곳마다 여백이 생겼다. 두 번째 그림은 부엌 옆에, 세 번째 그림은 서재 앞에 걸었다. 작은 그림들이 벽을 바꾸더니, 공간을 바꾸었고, 공간은 결국 내 감정을 바꾸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림 앞에 멈춰 서게 되고, 어느새 내 방은 작은 갤러리가 되어 있었다.
두 번째 변화는 돈을 쓰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전엔 100만 원이면 옷이나 전자기기를 샀다. 지금은 그 돈으로 내가 매일 마주할 장면을 사고 있다. 감상만으로도 충분한 만족인데, 놀랍게도 몇몇 그림은 2배, 3배로 가격이 오르기도 했다. 좋아서 샀는데, 가치도 생긴다는 것. 그게 실물 미술 컬렉션의 묘미라는 걸 알게 됐다.
세 번째 변화는 ‘작가’라는 존재를 이해하게 된 점이다. 처음엔 단지 예쁜 그림이 좋았다. 하지만 컬렉션이 쌓이면서, 작가의 이름이 궁금해졌고, 그의 전시를 찾아가고, 인터뷰를 찾아 읽고, 어느새 나는 그림 뒤에 숨어 있는 이야기까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림을 소장한다는 건 결국 작가의 시간과 생각을 함께 소유하는 것이었다.
네 번째 변화는 하루의 감정 밀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들고 그림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아침, 출근 전 5분, 퇴근 후 10분, 잠들기 전 1분. 짧지만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기분이 바닥을 칠 땐, 그림이 나 대신 웃어주었다. 좋은 그림은 조용히 사람을 붙잡고, 아주 부드럽게 위로해준다는 걸, 이제 나는 안다.
다섯 번째 변화는 ‘진짜 내 것’을 소유했다는 자부심이다. 프린트도, NFT도 아닌, 내가 직접 고르고, 내 마음으로 산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림. 그 그림이 내 책상 앞에 있고, 내 공간에 있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감정의 자산이 생긴 것이다.
1년간 그림을 모으며 바뀐 것은 단순히 벽면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내 감정, 내 소비, 내 하루의 결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흘러왔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그림이 그렇게 좋아요?” 나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한다.
“네, 좋아서 샀는데, 지금은 그 그림이 제 하루를 지켜주고 있어요.”
그림 한 점이 일상을 바꾸고, 일상이 바뀌면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바뀌면 삶도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