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한 게 아니라 쇼핑당했다 – 강남역에서 자본주의를 씹다 5화 –
원래 계획은
“양말 두 켤레만 사고 나오자.”
단순했어.
들어갈 땐 늘 단순해.
문제는, 나올 때 복잡해진다는 거지.
형은 순간, 생존 경쟁에 돌입했다.
“아 이거 안 사면 후회하겠는데요?”
직원의 그 한마디에,
나는 나의 의지와 재고 상황 사이에서 패배했다.
다음 매장.
“이건 진짜 기본템이에요!
지금 이거 안 사면 겨울에 못 구해요~”
…근데 지금은 여름인데요?
“그래도요~ 요즘은 미리 사놔야 돼요!”
미리 사는 게 아니라,
미리 당한 거야.
2시간 후.
손엔 쇼핑백 4개.
내용물은 양말, 슬랙스, 가디건, 캔들, 플랫슈즈(?)
심지어 내 사이즈도 아니다.
어느 순간
형은 걸어다니는 인간 지름신이 되어 있었고,
지하철 입구에서야 정신이 들었어.
카페에 앉아 카드 내역을 확인했다.
합계 198,000원.
그리고 알게 됐지.
고속터미널은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라
소비 심리 실험실이다.
할인, 라스트원, 1+1, 세트구성, 선착순.
이 모든 말들이
형의 자제력을 다이렉트 어택했다.
형이 오늘도 배운 것.
우리는 필요한 걸 사러 간 게 아니라,
사게 될 걸 미리 구경하러 간 거였다.
고속터미널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내가 흔들릴 것’을 잘 안다.
그리고 결국,
형은 쇼핑한 게 아니라 쇼핑당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갔지.
왜냐고?
자본주의는 기억을 지우고, 혜택만 기억나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