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보다 중요한 건 살아낸 하루다
달리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늘 스마트워치를 확인한다.
오늘은 몇 걸음이나 뛰었는지,
평균 속도는 어땠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찍히는 숫자 하나.
219kcal.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땐, 조금 실망했다.
‘이 고생하고 겨우 이만큼?’
숨은 턱까지 차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심장 박동은 뛴다는 표현으론 부족할 만큼 쿵쾅거렸는데.
내가 버텨낸 그 시간의 보상이 고작 이 숫자 하나라니.
하지만 며칠, 몇 주, 몇 달이 지나면서
나는 그 숫자가 의미하는 것을 조금씩 다르게 느끼기 시작했다.
219kcal.
그건 그냥 칼로리가 아니었다.
그건 오늘도 나 자신을 이겨낸 증거였다.
그건 오늘도 도망치지 않았다는 기록이었다.
그건 아빠가 아이에게 남기고 싶은 태도의 무게였다.
살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둬야 할 때가 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묵묵히 버텨야 할 때가 있다.
나는 그걸 매일 아침 3km에서 배운다.
누가 봐도 대단하지 않은 기록.
앱에 남겨도 좋아요 한 개도 안 달릴 평범한 숫자.
하지만 내게 이 219kcal은
‘오늘도 흔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가끔은 아이도 묻는다.
“아빠, 오늘도 뛰었어?”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응, 뭐 늘 그렇지.”
하지만 속으론 늘 외친다.
‘오늘도 아빠는 해냈다. 오늘도 아빠는 도망치지 않았다.’
지금은 달리는 것 외에도
쌓이는 숫자들이 있다.
하루하루 누적되는 감정,
깨달음, 그리고 아이를 향한 마음.
달리기를 끝낸 뒤,
앱에서 ‘오늘의 운동을 완료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면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한다.
“오늘도 괜찮았어.”
“이걸로 오늘 하루, 충분해.”
우리는 늘 더 큰 것을 원한다.
더 빠른 기록, 더 좋은 성과,
더 많은 결과.
하지만 진짜 위로가 되는 건,
조금밖에 줄지 않은 숫자 하나일 때가 있다.
숨이 차고, 땀이 흘러내리고,
마음이 비워지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나를 살아낸다.’
그리고 그 하루의 무게가
219kcal로 남는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숫자겠지만,
나에겐 의미가 가득한 숫자다.
아빠는 오늘도 219kcal를 태웠다.
그건 곧, 아빠가 오늘도 도망치지 않고 살아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일도,
이 숫자를 또 하나 쌓을 것이다.
아이에게 남겨주고 싶은 건
근육이 아니라 마음이고,
속도가 아니라 꾸준함이고,
기록이 아니라 기억이다.
그러니 오늘 이 숫자를 바라보며
나는 안다.
몸은 지쳐도,
마음은 분명 어제보다 단단해졌다는 걸.
그리고,
이 219kcal 속에는
말하지 못한 무수한 감정들이 있다.
그날 회의에서 들었던 서운한 말,
아이에게 짜증 내고 후회했던 저녁,
잠들기 전 문득 찾아온 불안한 내일.
그 모든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은 채
나는 달렸다.
이 숫자는 내 마음의 잔여물이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태운 열량이다.
그래서 이 숫자를 사랑하게 됐다.
내가 약하지 않았다는 증거,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
그리고 내가 오늘도 ‘아빠’라는 이름을 지켜냈다는 증거.
6편 – 매일 같은 거리, 매일 다른 생각
아침 3km를 반복하다 보면,
몸은 익숙해지지만, 마음은 늘 새로워집니다.
같은 길 위에서 피어나는 사색과,
그날그날 다른 나를 마주하는 이야기.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작고 사소한 숫자 하나에 마음을 걸고 있는 당신께,
오늘도 3km를 함께 걷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