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꽃은 자란다, 나도 그렇다 - 작은 새싹이 알려준 자람의 의미
엄마를 보러 다녀온 다음 날 아침,
로미는 조용히 꽃집 문을 열었다.
햇빛은 아직 서늘했고, 가게 안엔 어제의 여운이 머물고 있었다.
라벤더는 창가에서 천천히 잎을 펼치고 있었고,
드라이플라워의 그림자는 작업대 너머로 길게 드리워졌다.
물조리를 들고 천천히 꽃들에게 다가가던 로미는
화분 하나 앞에서 멈췄다.
라벤더 화분 아래, 눈에 띄지 않던 조그만 초록이
살며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새싹이다...”
처음엔 흙먼지인 줄 알았던 그것은
분명히 살아 있는 작은 생명이었다.
언제 자랐는지도 모르게,
보랏빛 라벤더 아래에서 자란, 이름 모를 작은 잎.
로미는 몸을 낮췄다.
작은 싹을 향해 숨을 고르듯 말을 건넸다.
“너도... 물 주는 걸 기다렸던 거구나.”
작은 싹은 말이 없었지만,
그 조용한 존재감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듯했다.
그날의 작업은 느리게 시작됐다.
라벤더를 정리하면서도,
로미의 눈은 자꾸 새싹을 향했다.
그 작은 자람이, 마치 자신의 마음 같았다.
‘불안하고 작고,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었구나.’
드라이플라워 상자에 있던 리시안셔스를 꺼내며,
로미는 예전에 엄마와 라벤더를 심던 날을 떠올렸다.
“흙을 고르고, 씨앗을 심고, 매일 물을 주면 돼.
하지만 너무 자주 만지면 뿌리가 놀랄 수 있어.”
엄마의 그 말이 오늘 새롭게 느껴졌다.
‘사람도 그렇지. 너무 불안하면 자라는 걸 잊어버리니까.’
작업을 마친 로미는 작은 이름표 하나를 꺼냈다.
하얀 나무막대에 볼펜으로 글씨를 썼다.
‘희망’
그 작은 팻말을 조심스럽게 새싹 옆에 꽂았다.
무게가 너무 가지 않게, 바람이 흔들지 않게.
“너는 이제, 내 꽃이야.”
점심 무렵, 가게 문이 조용히 열렸다.
조금 어색한 듯 들어선 여고생 한 명.
손엔 가볍게 접힌 종이쪽지가 들려 있었다.
“혹시... 꽃다발, 만들 수 있나요?”
로미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떤 마음을 담고 싶은가요?”
여고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좋아한다고, 말하려고 해요. 그래서... 용기가 필요해서요.”
그 말에 로미는 가슴이 따뜻해졌다.
‘나도 그랬어. 엄마에게, 말로는 못 했지만...’
로미는 리시안셔스를 꺼냈다.
프리지, 왁스플라워, 그리고 연한 분홍빛 라넌큘러스.
꽃을 하나씩 놓으며 말했다.
“이건 시작을 응원하는 꽃이에요.”
“이건 오래 기억되는 마음.”
“이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
여고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예쁘네요.”
로미는 포장지로 꽃을 감싸며 속으로 말했다.
‘나,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는 것 같아.’
포장을 마친 꽃다발을 건네며,
처음으로 말했다.
“이건... 용기의 꽃다발이에요.”
그 말에 여고생은 조용히 웃었다.
“감사합니다. 진짜로요.”
손님이 나간 뒤, 로미는 잠시 진열대 앞에 섰다.
방금 전까지 꽃이 놓여 있던 자리가 따뜻했다.
작업대에 앉아 다시 일지를 꺼냈다.
‘오늘의 꽃다발: 누군가의 첫 고백’
그 아래에 한 줄 더 썼다.
‘나도, 조금 더 자랐습니다.’
새싹은 여전히 라벤더 아래서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바람이 살짝 흔들어도, 꺾이지 않고.
그 작은 초록을 보며,
로미는 다짐했다.
“다음 꽃다발은, 나를 위한 꽃이어야 해.
잘하고 있다고,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그 말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한 인사였다.
그리고, 진심이었다.
그날 밤, 로미는 일기장에 마지막 문장을 남겼다.
‘꽃이 자란다. 나도 그렇다. 우리는 매일, 자라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햇살은 창문 틈새로 조금 더 따뜻하게 들어왔다.
로미는 가게 문을 열고 바닥을 쓸었다.
새싹은 어제보다 아주 조금, 잎을 더 펼쳤다.
“잘 자고 일어났구나.”
그 말이 무의식적으로 입에서 나왔다.
마치 친구에게 인사하듯, 자연스럽게.
꽃병의 물을 갈고, 라벤더를 뒤로 옮긴 자리.
거기엔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용기의 꽃을 고마워요. 전, 말했어요.”
어제의 여고생이었다.
쪽지를 보고 로미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 순간, 로미의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자랐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무언가.
‘나도 누군가에게 꽃이 될 수 있구나.’
그 깨달음은 조용하지만 강했다.
작업대에 앉아,
로미는 작은 흙 화분 하나를 새로 꺼냈다.
이번엔 씨앗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어떤 꽃이 피어날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심는 첫 꽃이란 게 중요했다.
흙을 덜고,
손끝으로 작은 구멍을 만들고,
씨앗 하나를 천천히 넣었다.
그 위에 흙을 덮고,
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모든 동작이 느리고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깊었다.
‘나도 자라고 싶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속도로.’
햇빛은 그 작은 화분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로미는 조용히 다짐했다.
“오늘도, 잘 피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