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처음으로, 나를 위한 꽃다발-고마웠다고, 괜찮았다고 말해주는 시간
아침 햇살이 유리문을 투과해 꽃집 바닥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새싹은 어제보다 조금 더 자라 있었고,
라벤더는 향을 잃지 않고 조용히 피어 있었다.
로미는 작은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작업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게 안은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준비해 온 꽃다발이 있었다.
이번에는 특별히,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꽃다발이었다.
어떤 주문도, 요청도 없었지만…
로미는 마음속으로 정해두고 있었다.
‘이번 꽃다발은, 나를 위한 거야.’
꽃을 고르기 시작했다.
프리지: 작지만 강한 향을 품은 노란 꽃
라넌큘러스: 겹겹이 겹쳐진 감정을 닮은 연분홍
에린지움: 조금은 거칠고 자기만의 결을 가진 꽃
유칼립투스: 향이 오래가는 잎사귀
향기, 질감, 높낮이.
하나하나 손에 쥘 때마다 로미의 마음속에서
작은 파동이 일었다.
꽃을 하나씩 정리하며 로미는 생각했다.
‘왜 이제야 나를 위한 꽃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타인을 위한 꽃을 만들 땐,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 사람이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일까를 먼저 상상했다.
하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자신이 웃는 얼굴을 상상해 보았다.
“수고했어, 로미.”
소리 내어 말하자, 목이 잠겼다.
꽃을 만지는 손끝이 잠시 멈췄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 말은 외워둔 문장이 아니라,
정말 지금, 마음에서 올라온 말이었다.
포장지 위에 꽃을 가지런히 놓았다.
한 송이씩 다듬고, 맞닿게 묶고, 리본을 골랐다.
심플한 크림색 리본.
부드럽고 단정하게 묶었다.
카드도 썼다.
‘오늘 너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있다면,
그건 “괜찮아”일 거야.’
카드는 봉투에 넣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꽃다발은 진열대 위가 아니라,
가게 한가운데, 햇살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놓았다.
로미는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았다.
자신이 만든 꽃다발.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만든 것.
그리고…
참 예뻤다.
그 순간 로미는 알았다.
누구에게든 주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꽃을 건네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작은 기적은 그렇게 매일 쌓인다.
조용한 공간, 따뜻한 말, 그리고 스스로를 위한 마음.
오늘, 로미는 자신에게 꽃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꽃다발을 만든 손끝이 아직 따뜻했다.
그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로미는 가만히 숨을 골랐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그게 지금의 꽃집이었다.
로미는 문득, 어릴 적의 자신을 떠올렸다.
언제나 눈치를 봤고,
“괜찮다”는 말을 너무 자주 삼켰던 아이.
지금의 자신이 그 아이를 마주한다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땐 힘들었지?”
“그래도 너, 참 잘 버텼어.”
“이제는 안아줘도 괜찮아.”
로미는 마음속에서 그 어린아이를 천천히 껴안았다.
어디선가 울고 있을지도 모를,
자기 안의 작은 나를.
꽃다발은 말없이 빛을 머금고 있었다.
햇살이 유칼립투스 잎에 닿아
그림자를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이렇게 따뜻할 수 있구나.’
그건 누군가에게서 받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에게 건네는 것이 더 어려운 말이었다.
그래서 이 꽃다발은,
조금은 울면서 만들었고,
조금은 웃으면서 포장한 마음이었다.
로미는 천천히 일어나,
작업대 뒤편에 있는 작은 상자를 열었다.
예전부터 아껴둔 노란색 리본 한 줄.
늘 손님을 위해만 쓰던 리본이었다.
그 리본을 꺼내
작은 카드에 묶어 보관했다.
“다음에 또, 나를 위한 꽃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그건 반복을 위한 준비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의 표시였다.
그리고 문득, 로미는 깨달았다.
꽃집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
누구도 자기 자신을 위해 꽃을 사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다는 걸.
“언젠가, 그런 사람도 들어왔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에게 꽃을 주러 오는 사람.”
그 순간, 작은 종이에 한 문장을 적고 싶어졌다.
유리문 옆 빈 액자에 넣을 말.
‘당신도, 꽃을 받을 자격이 있어요.’
이 작은 꽃집에,
그 문장이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로미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리고 가게 문을 열고
바람을 한 번 가게 안으로 들였다.
햇살은 더 밝아졌고,
꽃잎은 더 가볍게 흔들렸다.
로미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말했다.
“다음 꽃은, 조금 더 환하게 피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