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 사장님은 중학생입니다》

9화: 꽃은 이유보다 먼저 피어난다

by 라이브러리 파파

어느 오후, 가게 문이 열렸다.
무거운 공기를 끌고 들어온 듯한 조용한 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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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는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낯선 남학생이 서 있었다.
교복 바지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가게 안을 둘러보다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꽃…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처음엔 장난처럼 들릴 뻔한 말투였지만,

그의 눈은 장난이 아니었다.

로미는 천천히 다가갔다.
“누구에게 주실 건가요?”

잠시 침묵.
그리고 아주 조용한 목소리.


“엄마요.”

짧은 대답 뒤, 공기가 바뀌었다.
그 말 한마디에,
로미는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특별한 날인가요?”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요.”

로미는 웃었다.




그 ‘그냥’이야말로, 진짜 이유라는 걸 알기 때문에.

꽃은 늘 이유보다 먼저 피어난다.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이
먼저 색으로, 향기로, 온기로 전해질 때가 있다.


로미는 진열대 앞에서 몇 송이의 꽃을 골랐다.
작고 선명한 빨강.
따뜻한 살구색.
조용한 연보라.

그리고 그 옆에,
하얀 들국화를 아주 살짝 얹었다.

“이건 ‘그냥’이라는 이유에 어울리는 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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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장을 마친 꽃다발은 단정했고,
그 안에 담긴 말들은 조용하지만 분명했다.

소년은 꽃을 받아 들고 조심스레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 인사 속엔
많은 말들이 겹겹이 숨어 있었다.


가게 문이 닫히고,
다시 조용해진 공간 속에서
로미는 작업대에 앉아 일지를 펼쳤다.

‘오늘의 꽃다발: 말보다 먼저 도착한 마음’
그리고 그 아래,
‘꽃은 이유보다 먼저 피어난다’고 적었다.

그날의 햇살은 길었고,
가게 안엔 향이 오래 머물렀다.


꽃들은 말없이 피어 있었고,
로미는 그것이 충분하다는 걸 느꼈다.


잠시 후, 가게 밖에 서 있던 소년이 다시 돌아왔다.
문 앞에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카드 같은 거, 안 넣었죠?”

로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소년은 잠시 망설이다가 작게 웃었다.
“그게… 오히려 좋아요.”

그 말은 어떤 설명보다 진심 같았다.


소년은 주머니에서 작은 사탕 하나를 꺼내
작업대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두고 나갔다.
말없이, 고맙다는 인사처럼.

로미는 그 사탕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포장지에는 ‘레몬 향’이라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가끔은,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주고받는 게
더 솔직한 걸지도 몰라.’


작업대 옆의 메모장 한 귀퉁이에 로미는 적었다.

‘말은 없었지만, 마음은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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