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무기력]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아무 말도 듣기 싫었다
“일어났어?”
“밥 먹자.”
“왜 말이 없어?”
“또 그래?”
나는 그 말들조차 버거웠다.
눈을 떴지만, 마음은 아직 닫혀 있었다.
몸은 깨어났지만, 감정은 그대로 침대에 눕고 싶었다.
결혼 13년 차,
아이 둘을 키우고
사회라는 무대에서 애써 버텨오던
30대 중반의 어느 날,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청소도, 밥도, 말도.
그날의 나는
그저 침묵 속에 숨고 싶었다.
가족이 내 곁에 있지만
나는 외로웠다.
내가 무너지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그 순간이
가장 서러웠다.
아는가..
이런 심정은 누군가와 나누기도
어렵다..
아내는 부엌에서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있었고,
아이들은 티브이 만화를 보고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거실 바닥에 멍하니 앉아
그 모든 일상의 소리를
멀리서 들리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
그 말이
가장 아플 때 들렸다.
“몰라.”
나는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무기력이라는 감정은
분노처럼 폭발하지 않는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사람의 마음을 먹는다.
웃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도
혼자만 멍한 표정으로 남겨지는 느낌.
모든 게 흐릿하고,
모든 게 귀찮고,
무언가를 해도
변하는 게 없을 거라는 절망.
그날의 나는
내가 싫었다.
가족을 돌보지 못하는 내가,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내가,
함께 웃지 못하는 내가.
하지만 더 무서운 건
그걸 아는 나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괜찮아?”라는 말조차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왜냐하면,
그 질문에 대답할 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게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 있어?”
“힘든 거 말해도 돼.”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울 수 없었다.
말을 하면
눈물이 쏟아질까 봐.
눈물을 보이면
내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까 봐.
나는 그냥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이들이 놀다가 내 옆에 와서 말했다.
“아빠 오늘 기분 안 좋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내 아이가 너무 어른처럼 보였다.
내 무기력이
아이에게 걱정을 안겨줬다는 죄책감.
그건 어느 비난보다 더 날카로웠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무기력할 시간도 없어.”
“애들 때문에 힘들어도 버텨야지.”
“나만 이런 건 아니잖아.”
하지만 그런 말들이
자신을 더 외롭게 만든다는 걸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무기력은 죄가 아니다.
그건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찾아오는 정지 버튼’이다.
무기력한 날은
위로가 필요하다.
답이 아니라,
해결이 아니라,
그저 “그래, 그럴 수도 있어”라는 말 한마디.
그 말 한마디에
사람은 다시 숨을 쉰다.
그 말 한마디에
사랑은 다시 길을 찾는다.
그날 밤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오늘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말할 수 없었던 하루였다.”
그리고
아내가 남긴 포스트잇을 봤다.
“오늘 하루는 쉬어도 괜찮아.
우리 내일 같이 커피 마시자.”
그 작은 글에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무기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 덕분에
나는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요즘 좀 힘들어.”
“당신도 그래?”
“우리 같이 쉬어갈까?”
부부라는 이름은
함께 살아가는 것보다
함께 무너져도 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무기력한 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가정.
말하지 않아도
기다려주는 가정.
그것이
우리가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기억’ 아닐까.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아무 말도 하기 싫은 하루를
살아내고 있진 않나요?
그렇다면,
당신도 괜찮다고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먼저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은 무기력 속에 앉아 있어야
진짜 감정의 무게를 알게 됩니다.
그 감정이 지나간 뒤,
비로소 우리는 다시
서로를 향해 눈을 맞출 수 있습니다.
다음 편 예고
3편. [침묵] 싸움보다 무서운 건 아무 말도 없는 하루였다
소리 내지 않은 감정은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말이 없던 날,
표정도 사라지고
관심도 멀어졌다.
아이의 웃음소리만 남은 그날,
우리 부부는 서로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서로의 상처는 더 깊어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는
소리 없는 전쟁,
'침묵'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말보다 차가운 감정을,
어떻게 다시 말로 꺼내게 되었는지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