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침묵] 싸움보다 무서운 건 아무 말도 없는 하루였다
“…”
그날은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식탁에 마주 앉았을 때도,
아이를 등교시킬 때도,
서로 아무 말 없이
눈빛조차 피한 채 움직였다.
“다녀올게.”
“응.”
그 말마저도
습관처럼 뱉은 기계음 같았다.
침묵은 무서운 마음의 소리다.
“……”
어쩌다 이런 하루가 되었을까.
소리를 내는 싸움보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 침묵이
더 무섭고, 더 깊이 마음을 갈라놓았다.
싸움에는 감정이 실려 있다.
화가 나든, 서운하든,
어쨌든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침묵은 다르다.
마음이 ‘포기’라는 문턱을 넘고 있다는 신호다.
말조차 하기 싫을 만큼
지쳐 있다는 뜻이다.
결혼 13년 차.
아이 둘을 키우며 살아가는
30대 중반의 부부.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온 삶들...
무엇이 잘못된 건가 조차 잊어버리고 산 날들..
우리는 침묵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침묵이 편해서가 아니라,
말이 아파서.
말을 꺼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
더 이상 기대되지 않아서.
기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채
입을 닫는 법을 배워버렸다.
침묵은 표정을 없앤다.
감정이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해
무표정으로 서로를 피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상처도 안 줄 것 같아서.
하지만 아이는 다 안다.
아이의 눈은
우리의 대화보다 예민하게
공기의 분위기를 읽는다.
“엄마, 아빠 오늘 또 말 안 해?”
아이의 질문이
날카롭게 가슴을 찔렀다.
“오늘은 조용하네.”
“뭔가 안 좋은 일 있었어?”
아이의 말투엔
어른처럼 분위기를 살피는 조심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부끄러워졌다.
아이 앞에서는
싸우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감정이 죽은 부모.
서로를 외면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 가운데,
작은 숨소리로 견디고 있는 아이.
가끔은
소리 지르는 싸움보다
이런 침묵이 더 폭력적이다.
서로를 안 보는 눈.
의미 없는 동선.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가득 차 있다.
그날 밤,
나는 침대 옆에 누운 아내를 보았다.
하지만 말을 걸지 않았다.
“……”
아내도 나를 보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등을 돌린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의 모든 감정은 미해결인 채
우리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이럴 때마다 생각한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
처음 연애하던 시절,
밤새 대화했던 그때가 있었다.
눈만 봐도 웃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눈을 마주치는 게
조심스러운 사이가 되었다.
말을 꺼내는 것이
분위기를 망치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침묵은 오래 둘수록
사랑을 잠식한다.
말하지 않으면,
전하지 않으면,
오해는 상처로 바뀌고,
상처는 거리로 남는다.
아이의 숙제를 봐주다가,
아이의 그림 속에
엄마와 아빠가 떨어져 그려져 있는 걸 보았다.
“왜 이렇게 그렸어?”
“음… 그냥. 요즘은 둘이 잘 안 붙어 있잖아.”
그 말을 듣고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의 관찰은 정직했다.
침묵의 그림자를
그 작은 손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아내에게 조용히 말했다.
“우리… 말 좀 해볼까?”
아내는 놀란 듯 고개를 돌렸고,
잠시 멈췄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터졌다.
한 줄기 물처럼
얼어 있던 감정들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너무 오래 말 안 했지.”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나도 그래.”
우리는 그렇게
서툰 대화를 시작했다.
모든 오해가 풀리진 않았지만,
말이라는 게
얼마나 위대한 연결인지
그날 다시 느꼈다.
침묵은 편하지 않다.
감정을 숨기는 건
사랑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미루는 일이다.
그리고 그 미루기의 끝은
무너짐이다.
오늘도 침묵하고 있다면,
작은 말부터 꺼내보세요.
“괜찮아?”
“오늘은 조금 힘들었어.”
“우리 같이 커피 마실래?”
말은 작지만,
그 말은
관계를 다시 열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열쇠입니다.
다음 편 예고
4편. [후회] 아이 앞에서 소리쳤다, 그리고 울었다
“그 순간, 나는 이성을 잃었다.”
감정이 폭발하고,
아이 앞에서 너무 큰 소리를 내버렸다.
그리고…
아이의 눈빛을 보았다.
그 말 없는 눈빛 속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다음 편에서는
분노와 후회,
그리고 진심 어린 사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이 앞에서 무너졌던 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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