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책이 아닌 얼굴을 읽어주는 시간〉
책을 읽는 시간이지만
나는 책 보다 더 오래 바라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의 얼굴입니다.
책장을 넘기는 손보다
책을 바라보는 눈동자보다
나는 아이의 표정을 먼저 읽습니다.
책을 좋아하게 되는 그 순간을
나는 아이의 얼굴에서 먼저 느낍니다.
책 속 장면에 따라 달라지는 미간.
슬픈 장면 앞에서 길어지는 눈빛.
작은 글씨를 읽을 때 입술 끝이 오므라드는 모습.
그 모든 순간이
책 보다 먼저 나를 감동시킵니다.
책을 함께 읽는다는 건
같은 문장을 나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같은 마음을 살피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 그 마음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봅니다.
라운이는 진지한 성격입니다.
책을 읽을 때도 늘 집중합니다.
하지만 집중할수록 표정은 더 단단해지고
속마음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럴 때 나는 책을 덮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묻습니다.
“어땠어?”
짧은 질문 하나에
조금씩 열리는 얼굴.
“이거 좀… 화났어.
왜 저 친구가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어.”
그 말 하나에
책이 준 감정이
이제야 아이 안에서 말을 얻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아이의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매번 배웁니다.
‘이 장면은 무섭다’고 말하지 않아도,
아이의 손이 멈추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대사는 웃겼다’고 말하지 않아도,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면 보입니다.
책이 알려주지 않는 것을
아이의 얼굴이 가르쳐줍니다.
루아는 책을 볼 때 표정이 풍부합니다.
그림책을 넘기며
소리를 내지 않아도
얼굴 전체로 반응합니다.
깜짝 놀라는 눈,
속상한 듯 움츠러드는 어깨,
갑자기 고개를 갸웃하는 표정.
그 순간 나는 책 보다
루아의 얼굴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책은 거울이기도 하지만
그 거울을 바라보는 얼굴이 진짜입니다.
아이는 책을 보며 감정을 배웁니다.
하지만 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감정을 함께 나누는 법을 배웁니다.
책을 읽는 시간은
문장을 따라가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아이의 얼굴을 읽고,
그 얼굴 속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
그것이 진짜 ‘책을 함께 읽는 시간’이라는 걸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책 속 이야기를 잊어버려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표정은
내 마음속에 오래 남습니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나는 그 표정을 떠올리며
아이의 하루를 이해하려 애씁니다.
책을 읽는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책을 읽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책에서 멀어지려 할 때
나는 “이 책 끝까지 읽어야 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디가 제일 재미없었어?”
“어떤 장면이 마음에 안 들었어?”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아이의 얼굴이 조금씩 움직입니다.
불편한 기억이 입술로 옮겨지고,
슬펐던 감정이 눈동자에 머뭅니다.
그 말은,
읽었다는 증거이고,
느꼈다는 증거입니다.
책은 말보다 느리고
표정보다 진실합니다.
하지만 그 진실은
말이나 글이 아니라
표정 속에서 가장 먼저 피어납니다.
책을 덮은 후,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따뜻한 독후 활동입니다.
감상을 쓰게 하지 않아도,
요약을 시키지 않아도,
그저 표정을 읽으면
그날의 독서는 이미 성공한 겁니다.
나는 이제
책을 읽으며 아이의 얼굴을 봅니다.
그리고 그 얼굴 속 감정을
책 보다 오래 기억합니다.
책이 아닌 얼굴을 읽는 시간.
그 시간이야말로
아빠로서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소중한 페이지입니다.
책을 읽는 시간은
문장을 따라가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아이의 감정을 따라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책을 통해 아이를 이해하려고 했지만,
어쩌면 나는 아이의 얼굴을 통해
책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책을 읽는 아이의 얼굴을
더 오래 바라보는 아빠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