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는 흘러가지만, 전세는 묶인다. 너의 삶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니?
형은 스물여섯에 처음 월세방에 살았어.
3평짜리 반지하 원룸, 여름이면
곰팡이 걱정, 겨울엔 난방비.
그래도 혼자 사는 게 좋았지.
일하고, 밥 먹고, 책 읽고, 조용히 자는 하루.
세상이 내 공간 하나쯤은 허락해 주는 느낌이었거든.
그런데 어느 날 통장을 보는데,
매달 빠져나가는 월세가 숫자가
아닌 '시간'처럼 느껴졌어.
일 년이 지나도 남는 게 없다는 허무함.
그게 마음을 눌렀지.
그래서 전세로 옮겼어.
보증금은 부모님이 도와주셨고,
집도 넓고 조용했어.
처음엔 꽤 만족했지.
그런데 알게 됐어.
착의 대가로 얻은 안정감이,
때론 ‘움직이지 못하는 불안’이 될 수 있다는 걸.
월세의 장점은 명확해.
유연하지.
직장 옮기면 바로 이사할 수 있고,
보증금도 상대적으로 낮아.
요즘 1인 가구는 이걸 선호해.
살아보고 결정하는 ‘테스트 라이프’ 같은 거지.
하지만 매달 나가는 고정비는 결국 부담이 돼.
일 년 동안 80만 원씩 나가면 거의 천만 원이야.
모아도 모은 것 같지 않고,
사는 게 아니라 '빌리는 삶'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
전세는 정착감을 줘.
이사 걱정 없이 2년을 내다볼 수 있다는 건,
그 자체가 마음의 여유야.
하지만 전세도 쉬운 길은 아니야.
금리 오르면 대출 부담이 늘고,
언제 집주인이 바뀔지도 몰라.
부동산 뉴스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지.
무엇보다,
보증금이라는 큰돈이 묶인다는 건
내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드는 거야.
형이 보기엔 이건 ‘집’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 문제야.
지금 삶이 유동적이라면 월세
루틴이 필요하고 고정된 시간이 필요하다면 전세
목돈 여유가 없고 매달 수입이 안정적이라면 월세
대출을 감당할 수 있고 장기 계획이 있다면 전세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야.
네 하루를 지탱하는 리듬이고,
네 감정을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야.
사람들은 말하지.
"월세는 돈 버리는 거야."
근데 형은 그렇게 생각 안 해.
“지금 네가 필요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거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유,
혹은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안정.
네가 지금 어디에 머물러야
더 잘 쉴 수 있는지,
더 잘 일할 수 있는지,
더 잘 살아낼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봐.
선택에 정답은 없어.
다만, 너에게 딱 맞는 타이밍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