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10,030원, 하루의 가치를 묻다
나는 오늘도 편의점 앞을 지나쳤다.
문 옆 파라솔 밑, 의자 두 개에 앉아 있던 사람들.
하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하나는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들의 하루는 몇 시간짜리였을까.
그리고 그 시간의 값은 얼마쯤이었을까.
2025년, 대한민국의 최저시급은 10,030원이다.
이제야 드디어 ‘1만 원 시대’다.
뉴스는 그렇게 말했다.
“처음으로 만 원 넘었다!”
그 말이 칭찬인지, 위로인지, 경고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10,030원이면
버스 두 번 타고, 삼각김밥 하나 사 먹을 수 있다.
그렇게 계산하면, 하루 8시간 노동은
삼각김밥 여덟 개와 왕복 교통비 한 번쯤 된다.
어떤 사람은 그 시간에 사람을 살리고,
어떤 사람은 정육점 고기를 포장한다.
어떤 사람은 마트에서 카트를 정리하고,
어떤 사람은 세무서를 청소한다.
그 일들이 어떻게 같은 숫자로 값매겨질 수 있을까?
사람들은 말한다.
“열심히 하면 올라간다.”
“버텨야 된다.”
“다 힘들다.”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왜냐하면
최저임금은 늘 ‘버티는 사람들’ 위에 세워진다.
고용이 불안한 사람들, 내일 일터가 사라질 수 있는 사람들.
‘내가 이만큼밖에 안 되나’ 싶은 사람들.
그들의 시간에 붙은 값표가 10,030원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정확히 60분을 채워야 받을 수 있다.
서울시는 말한다.
“사실 10,030원으로는 못 산다.”
그래서 서울만의 생활임금은 시급 11,779원이다.
(공식 발표 자료, 2025년 서울시 기준)
최저임금이 아닌,
진짜 ‘살 수 있는 돈’이 따로 존재한다는 건
우리가 모두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현실이다.
최저임금은 시간당 지급되는 돈이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의 존엄에 대한 평가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한 시간 동안 고객에게 17번 인사를 하고,
치우고, 쓸고, 닦고, 포장하고, 확인하고, 또 인사하는 그 시간.
그 시간을 마치
“이건 10,030원짜리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슬프다.
돈이 적어서가 아니라,
이 숫자가 내 하루를 설명하는 전부가 될까 봐.
우리는 하루 8시간을 팔아서
컵라면 여덟 개, 버스 네 번,
그리고 작은 자존심 하나를 얻는다.
그게 괜찮다고 말하기엔
이 세상은 너무 많이 바뀌었다.
비트코인은 1.5억이다.
커피는 4,800원이고,
편의점 도시락은 5,000원이 넘는다.
택배기사님은 하루에 300개를 배달해야 하고,
아르바이트생은 하루 9시간 서 있다.
그런데도 10,030원이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숫자만 듣고 있으면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해 착각하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누군가의 하루 가격표 안에서 살고 있을지 모른다.
그게 10,030원이든, 100만 원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이 숫자가 당신의 ‘가치’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고,
하지만 분명히 더 존엄한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