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급제 도입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지?
“이제는 직무 기준으로 연봉을 책정합니다.”
회사의 전사 메일에 이 문장이 뜬 날,
분위기는 이상했다.
겉으론 다들 조용했지만, 톡방에는
묘한 이모티콘들이 떠다녔다.
회의실에서는 속닥이는 말들이 들려왔다.
“그럼 누구는 깎이고,
누구는 올라간다는 얘기 아니야?”
“기존 연봉보다 낮으면 어떻게 한다는 거지?”
“직무라는 게 그렇게 명확해?”
나는 인사팀 회의에서 곤란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직무급제, 말은 그럴듯하지만
현장에서는 늘 ‘공정함’보다 ‘혼란’이 먼저 왔다.
직무급제, 이상적이지만 현실과 부딪힌다
직무급제란, 쉽게 말해 직무의 가치에 따라
보상이 결정되는 구조다.
업무 내용, 책임 범위, 시장 가치를
기준으로 급여를 설정하자는 취지다.
논리적으로는 공정하다.
하지만 실무에서 마주한 현실은
조금 달랐다.
예를 들어, 마케팅 직군에서
디지털 분석 직무는
시장 수요가 높다며 연봉이 조정됐다.
하지만 그 팀 안에는 수년째
온라인 채널을 맡아온 실무자도 있었다.
“제가 담당하는 업무가 줄어든 것도 아닌데,
왜 제 연봉은 그대로죠?”
또 다른 팀에서는 사내 공정 담당 직무가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정 결과, 팀장이 팀원보다
연봉이 낮아졌다.
“일을 더 오래 하고, 더 큰 책임을 지는
사람이 왜 보상은 적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직무는 정량화돼도, 감정은 계량되지 않는다
직무급제가 처음 도입되던 시절,
나는 늘 같은 표를 만들었다.
JD(Job Description),
점수표, 외부 시세자료, 평가 기준표.
그 어느 때보다 논리적이고 정리된 자료들이었다.
하지만 회의실에서 그걸 설명할 때마다 느꼈다.
사람들은 숫자보다, 자기 일에 대한 존중을 바란다.
“그럼 나는 조직에서 덜 중요한 일이라는 건가요?”
“왜 제 직무는 ‘하위그룹’에 들어가 있죠?”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기여도는 고려 안 하나요?”
직무급제는 말한다.
“그건 직무 가치와는 별개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말한다.
“그건 나의 자존심과 직결됩니다.”
진짜 갈등은 ‘역전’에서 시작된다
직무급제의 가장 큰 파장은
역전 현상이다.
한 부서 내에서 경험이 적은
직원의 급여가, 경험 많은 직원보다 높아지는 순간.
그때부터 팀장은
팀원을 지도하기 어려워지고,
시니어는 후배에게 위축되기 시작한다.
급여는 단지 금액이 아니다.
조직에서의 ‘위치’와 ‘존재감’이기도 하다.
그래서, 직무급제가 실패였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직무급제는 분명 한 걸음
더 공정에 가까워지려는 시도다.
문제는, 그 시도를 설명하는 방식에 있다.
직무가 아니라, 사람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해야 한다.
도입보다 중요한 건, 사후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기준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당신의 일은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도는 갈등을 키우는 도구가 된다.
제도는 수치를 기준 삼지만,
사람은 감정을 기준 삼는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직무급제는 설명에서 승부가 갈립니다.
공정한 기준이 있다면,
공정하게 들리게 말해야 하죠.”
다음 이야기 예고
〈인사평가가 끝나면,
왜 팀장은 늘 한숨을 쉬나〉
표준화된 평가표, 숫자로 찍는 점수,
그리고 평가 뒤에 남는 묘한 감정의 파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