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광개토대왕이 영어로 외워지는 순간, 삼국이 그려졌다
“삼국시대가 왜 이렇게 헷갈릴까?”
고등학교 시절, 나는 늘 그 질문을 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이름은 기억해도 누가 뭘 했는지 헷갈렸고,
시대가 엇갈려 머릿속에서 자꾸 충돌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사를 영어로 외우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삼국’이라는 덩어리가 ‘특징 있는 세 나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고구려였다.
Goguryeo. A powerful kingdom in northern Korea and Manchuria.
Expanded under King Gwanggaeto and King Jangsu.
고구려를 영어 문장 하나로 외우고 나니,
머릿속에서 고구려는 ‘북방의 강국’이라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단어 몇 개지만 그 안에는 지역, 확장 방향, 중심인물이 모두 담겨 있었다.
지리와 역사, 전쟁과 정치가 동시에 연결됐다.
무엇보다, 광개토대왕이 영어로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Gwanggaeto the Great. He conquered many regions
in the north and helped Goguryeo become the strongest kingdom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 북방 진출의 궤적이 그려졌다.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고구려의 정체성을 만든 ‘행동’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영어 문장의 힘이었다.
단어는 줄었는데, 이해는 늘어났다.
Baekje. A kingdom that thrived
through sea trade and cultural exchange with Japan.
백제는 어떻게 외울까. 대부분은 근초고왕 정도를 떠올리지만
흐름은 모호하다.
그런데 ‘해상 교류’와 ‘문화 전파’라는 단어로 요약하니,
일본과의 관계가 선명해졌다. 바다를 통한 외교의 이미지가 붙고,
‘문화 강국 백제’라는 키워드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Silla. The kingdom that unified the Three Kingdoms
with help from Tang China.
신라는 어떨까. 힘으로 삼국을 제압한 게 아니라
외교를 통해 통일했다는 사실을,
영어 문장 하나로 기억하게 됐다.
싸움보다 관계. 전쟁보다 동맹. 그런 특징이
영어 문장 안에 간결하게 담겨 있었다.
단어를 외운다기보다, ‘핵심을 영어로 재구성’하는 느낌이다.
광개토대왕이 단순히 ‘전쟁 잘한 왕’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Gwanggaeto the Great –
He expanded Goguryeo’s territory greatly.”
이 한 문장에 배경, 특징, 역사적 의미가 담긴다.
이게 영어로 외우는 진짜 이유다.
말은 줄어들지만, 기억은 풍부해진다.
사실과 사실 사이가 이어지고, 나라의 특징이 선명해진다.
고구려
Goguryeo – Northern kingdom expanded by conquest
광개토대왕
Gwanggaeto the Great – Expanded Goguryeo’s territory
백제
Baekje – Maritime kingdom with cultural exchange
신라
Silla – Unified Korea with Tang China
삼국 통일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 Led by Silla with diplomacy
역사는 맥락이다.
그 맥락을 가장 빠르게 붙잡는 방법이 바로 언어다.
한국사를 영어로 외운다는 건 단어를 바꾸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속도’를 바꾸는 일이다.
광개토대왕이 영어로 외워지는 순간,
삼국은 머릿속에서 나란히 자리를 잡는다.
각자의 성격을 가지고.
그게 공부였다.
지겨운 게 아니라, 말이 통하는 감각.
《훈민정음이 Hangul이 되는 순간,
세종대왕이 내 친구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