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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사장님은 중학생입니다》

[에필로그] – 그 꽃집에서 시작된 이야기

by 라이브러리 파파

언제부터였을까.

꽃을 보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한 건.


빨간 장미를 보면 화가 난 얼굴이,

노란 튤립을 보면 울고 있는 뒷모습이,

하얀 안개꽃을 보면 아무 말 없이 웃던 그 아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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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학생이었고,

작고 오래된 꽃집의 ‘사장님’이었다.


아직 배울 것도 많고, 감정도 서툴렀던 나였지만

꽃을 만질 땐 조금은 어른스러워지고 싶었다.


꽃잎 위로 흐르던 이슬처럼,

내 마음도 어느새 그렇게 자라났다.


그렇게, 그 봄.

꽃집 안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피고 졌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처음 그 문을 열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손끝이 조금 떨렸고, 종이처럼 얇은 꽃잎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 어느 꽃부터 물을 줘야 할지,

나는 그냥 작은 숨을 들이마신 채, 안으로 들어섰다.

그게 내가 사장님이 된 첫 번째 날이었다.


꽃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던 내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꽃은 내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괜찮아, 너는 할 수 있어.”

아무도 듣지 못했겠지만 나는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


꽃잎을 하나하나 매만지며, 나는 하루를 버텼고

잎사귀의 물기를 닦아내며, 내 마음도 닦아냈다.

계절이 흐르듯, 내 안의 시간도 흘렀다.

그 작은 공간, 꽃과 사람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던 단골 아주머니의 따뜻한 미소,

고백을 망설이던 소년의 떨리는 손,

이별을 준비하던 노부부의 마지막 꽃다발,

그리고 병원에서 보내온 엄마의 짧은 메시지.

그 모두가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계절이었다.


가끔은 힘들었다.

손님이 하나도 없는 날,

시들어버린 꽃들을 버릴 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꽃시장으로 가던 오후들.

나는 중학생이었고, 동시에 가게의 사장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외롭진 않았다.

꽃들이 늘 내 곁에 있었고,

그 꽃을 사러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채워줬다.

누군가의 기쁨이 내 손을 거쳐 전해지고,

누군가의 슬픔이 내 꽃다발에 묻어나갔다.


처음으로 웃으며 카운터에 섰던 날,

첫 매출이 찍혔던 그날,

직접 만든 꽃다발을 들고 아이가 환하게 웃던 순간.

그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내가 이 꽃집을 열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평범한 학생으로 살았겠지.

하지만 그랬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도

나의 마음을 이토록 깊이 들여다보는 일도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이 가게는 단지 꽃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누군가의 시간을 안아주는 곳이었고,

누군가의 감정을 받아주는 공간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키워낸 정원이었다.


한 송이 꽃을 고르는 손길 속에서,

나는 사람들의 진심을 읽게 되었고

그 진심을 담아 꽃을 묶으며

내 마음도 조금씩 정리되어 갔다.


계절은 몇 번이고 바뀌었고,

꽃들은 피고 졌다.

가게 앞 작은 화분에 핀 데이지부터

시들어간 국화까지,

모든 것이 내 이야기가 되었다.


어느 날은 울면서 꽃을 묶기도 했고,

어느 날은 하얗게 웃으며 포장지를 감싸기도 했다.

그 모든 날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 꽃집을 오래 했어?”

나는 웃으며 말한다.

“그냥… 좋아서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또 수많은 감정을 느꼈다.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따뜻했던 순간들.

그 모두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꽃잎 같은 기억들이다.


이제 나는 다시 그 문을 닫는다.

이 꽃집은 더 이상 열려 있지 않지만

내 마음속 정원은 언제나 피어 있다.

그곳에 피어난 이름 없는 꽃 한 송이,

그게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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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 꽃집사장님은 중학생입니다
글 · 라이브러리 파파

“꽃을 보면, 사람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열네 살 로미는 엄마 대신 꽃집을 지킵니다.
작고 낡은 가게 안에서,
누군가의 고백과 이별, 시작과 끝을 꽃으로 묶어 건넵니다.
학교에선 아이였지만,
가게에선 하루하루 마음을 다해 어른이 되었습니다.
꽃잎 하나하나에 담긴 진심,
그리고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던 이야기.
그 봄, 로미가 피워낸 건 꽃이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의 성장기였습니다.

Flux_Dev_A_whimsical_and_cozy_flower_shop_with_vintage_wooden__1.jpg 어릴 적 꽃집 앞에서 찍은 로미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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