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붙은 시간과 손 안의 시간 사이에서
형은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벽에 걸린 달력을 본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다음 주에 뭐가 있었는지.
손으로 넘기고,
형광펜으로 동그라미 치고,
때로는 구겨진 귀퉁이를 펴보기도 한다.
그 달력에는
형의 생활의 온도가 묻어 있다.
종이 달력은
그날의 기억을 공간에 남긴다.
냉장고 옆, 현관문 옆, 책상 옆.
어디에 걸려 있든
그 공간을 지날 때마다
‘시간’이 보인다.
스티커로 표시된 기념일,
빨간색으로 표시된 중요한 날,
펜으로 삐뚤게 적어둔 메모.
그건 일정이 아니라
마음이 남긴 기록이다.
반면
스마트폰 캘린더는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시간이다.
알림을 설정하고,
색상별로 구분하고,
반복 일정을 자동으로 입력한다.
모든 게 효율적이고
모든 게 깔끔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형의 손글씨’는 없다.
기억보다 기능,
표현보다 정리가 중심이 된다.
그래서 편하지만
때론 잊히기 쉬운 시간이 된다.
그래서 너는 지금, 어디에 시간을 남기고 있니?
형이 보기엔
종이 달력과 스마트폰 캘린더의 차이는
시간을 ‘관리’하느냐, ‘기억’하느냐의 차이다.
하나는 효율을,
하나는 온기를 남긴다.
둘 다 필요하지만
형은 중요한 약속일수록
한 번쯤 종이에 적어본다.
형의 마지막 한 마디
형은 어느 날,
스마트폰 속 알림이 아니라
달력에 적힌 손글씨를 다시 보게 됐다.
조금은 삐뚤고,
조금은 흐릿했지만,
그 글씨엔 뭔가가 남아 있었다.
“그날이 다가오는 걸
미리 느낄 수 있었어.
왜냐면 그건,
내가 손으로 남긴 시간이었으니까.”
너는 오늘,
어떤 방식으로 하루를 기억하고 있니?
그리고 그 기억은
지워질 수 있는가,
아니면 남겨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