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5번 출구, 오늘도 출근 안 하는 사람입니다

버스는 오고,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by 라이브러리 파파

강남역 5번 출구.

사람들은 다 바쁘다.


회의를 가고, 고객을 만나러 가고,

팀장 눈치를 보며 빠르게 걷는다.

누구 하나 멈춰 있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형은 멈. .. 다.


형은 오늘도 출근하지 않는다.

출근 안 한 지 137일째.


그런데 왜 강남에 나왔냐고?


그냥… 집에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도서관도 좋지만, 사람 냄새가 나질 않아서.

집 앞 카페는 너무 익숙해서.


그래서 강남이다.

그중에서도 5번 출구 앞 중앙차로 버스정류장.


이곳이 좋은 이유가 있어.

서 있기만 해도 뭔가 중요한 사람처럼 보인다.

어디 가는 사람처럼 보이고,

무언가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형은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오늘도 도서관 책 반납은 안 하고,

버스도 안 타고,

그냥 정류장에 서서

버스 정보판만 보고 있었다.


2025년 6월 11일(수) 14시30분경 5번출구 앞 중앙차로

버스가 온다.

9400, 500-1B, 6000, 9711…

LED 화면에는 목적지와 도착 시간.

그 옆에 선 형은

목적지도, 도착 시간도 없다.


문득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의 정보판에

‘곧 도착’이라고 뜰 수 있을까?


마흔이 되기 전까지,

혹은 올해 안에,

아니면 이번 달 안에라도.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유리창에 비친 형은 반팔에 슬리퍼.

출근길 정중앙에서

형은 백수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솔직히 인정한다.


“그래, 나 요즘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나도 이렇게 글 쓰고 있어.”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걸 쓰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조금 괜찮은 사람 같다.

적어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보다는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는 느낌이랄까.


형은 오늘도 버스를 타지 않는다.

하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하루를 버틴다.


아무 목적지 없이 나선 날인데,

그게 오늘 글의 출발점이 되었다면

그거면 됐지, 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라이브러리 파파 피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