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이 들려준 삶의 이야기
관악산을 오르고 싶었다. 연주대에 가고 싶었다. 연주대에 가면 같은 이름을 갖은 그 사람의 영혼이 나를 기다릴 것만 같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그 자유로운 영혼과 커피 향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깊숙히 바라보면 내가 그의 영혼을 찾을 땐 마음이 지쳤을 때다. 심정의 곡선이 가장 저점을 찍었을 때 만난 영혼이기에 그러한 것이겠지.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착하디 착한 영혼은 오늘 나에게 신을 보내주고 자신의 영혼에서 벗어나라고 등을 세게 밀어주었다. 관악산에서.
요즘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고민이 많다. 스트레스가 독이 되어 내 몸 구석구석을 지나가고 있던 나날이 계속 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고 언제나처럼 드립커피 한 잔을 내리고, 책을 폈다.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중학교 때 인도에 대한 동경심을 품으며 처음 읽고, 마음이 예쁜 친구가 이 책이 본인의 바이블같은 책이라며 눈을 반짝일 때 두번째로,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중이다.
언제 읽어도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류시화의 글은 인도와 힌두, 그리고 그들의 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다. 오늘 읽은 에피소드 중에 '너는 유형의 목적지로 가는 것이 아니다. 신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신 역시 특정한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얘기하는 내용이 있었다. 신은 모든 사람의 인연을 그냥 그렇게 설계한 것이 아니라 전생의 업보에 맞게 만남과 헤어짐을 주선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만난 사람은 내 전생의 업보에 따라 신이 그 장소, 그 시간에 만나게 했다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도 인연을 어느정도는 믿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신을 만났다!'라고 할만큼 놀라운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책의 그 구절 때문이었나! 정말 그 사람을 만나 마음의 종이 울리는 경험을 했다. 신이 나에게 보내준 것이라곤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한 예쁜 아주머니였다. 평소엔 오전에 가는 등산코스를 오늘은 늦게 시작했다. 느즈막이 사당역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를 걷는데 반대편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말을 거셨다.
'아가씨, 연주대까지 가요? 거기까지 얼마나 걸려요?'
'아.... 네. 저는 한시간 반 정도 잡고 가요!'
'아가씨 혼자 안 무서워요? 나는 위에 바위까지 갔다가 너무 무서워서 내려왔어요.'
'아.... 저는 그냥 금방 다녀오려고 별 생각 없이 왔어요. 몇 번 오기도 했구요. 올라가면 절이라 풍경이 꽤나 좋아요.'
여기까지 이야기 하고 다시 올라가려했다. 오늘은 누군가 대화를 나눌 기분도 아니었고, 대화에서 보듯 말 머리마다 '아....'라고 붙이는 건 순전히 나의 낯가림 탓이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무언가 매우 결심을 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저도 올라가보고 싶은데, 아가씨 따라 다시 올라가도 되죠? 저도 따라 가야겠어요! (결심 + 눈반짝!)'
사색하러 온 등산길에 모르는 누군가가 함께 한다는 사실이 살짝 불편했다. 정말 이모티콘이 있다면 붙이고 싶을 정도로 아주머니는 의지결연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셨다. 곱고 예쁜 사람에게 약한건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것이긴 하나 나는 정말 낯을 많이 가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티내고 먼저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살짝 웃으며 그렇게 하시라고 하곤 우리의 산행이 시작되었다.
아주머니는 난생 등산이 처음이라 하셨다. 일하느라 바뻐 산에 못갔고, 안 가다보니 한번도 가지 못했다고 하셨다. 지금은 낙성대에 사시면서 손주 둘을 보고 계신데, 손주들이 유치원에 가면 집에 할 일 없이 앉아 있기가 심심해 오늘 한번 나와보셨단다. 그렇게 첫 산행을 이 험악한 관악산으로 와 힘든 것도 힘든 건데, 잠깐 바위에서 쉬는 동안 한 아저씨가 오셔서 '아줌마, 혼자 산 타요? 여자 혼자 온 거에요?'라는 질문을 받곤 너무 무서우셔 허둥지둥 가던 길을 돌아오셨다고 했다.
나는 젊고 '말걸지 마세요'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기에 중년 등산객들이 말을 거는 경우가 잘 없지만, 친한 이모는 등산을 가면 그렇게 아저씨들이 말을 건다고 했다. 예쁘장한 아줌마가 혼자 있으면 아저씨들이 그렇게 추파를 거는 경우가 많다며 한창 떠들었었는데 그게 이 아주머니한테도 일어났던 것이다.
여하튼, 나는 아주머니와 가파른 돌길을 함께 타고 올랐다. 별 말 없이 올라가다 풍경이 탁 트인 계단에 다다랐을 때 정적이 어색하기도 하고 아주머니의 억양이 마치 강원도 말투 같아서 고향이 어디시냐 물었다. 우리 엄마가 강원도 사람이라 고향 얘기를 하면 금방 친근해질까 했던 가벼운 마음이었다.
'고향이 어디세요?'
'(웃음, 매우 의미심장한 웃음) 어딜 것 같아요?'
'아, 저희 엄마가 강원도인데 강원도 분이신가 해서요!'
'아니에요, 저 조선족이에요.'
아닌척 했지만 놀랐다. 실은 나는 조선족을 처음 봤다. 예전에 티벳 여행할 때 가이드님이 조선족이셨는데, 워낙 박식하신 분이라 즐거이 여행했던 기억 정도만 남는다. 오르던 계단을 모두 올라 전망대에 잠깐 앉았다. 호기심이 생겨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별 거 아닌듯 나에게 영감을 준 얘기들을 많이 해주셨다.
아주머니는 사람이 뭐든 열심히 하면 안 될 것이 없다고 믿는 분이시다. 친척과 가족들 모두 한국에 왔기에 외로움은 없었지만, 머나먼 고향을 떠나 새로운 터전에서 살아 남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래서 정말 열심히 사셨다고 한다.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조금 더 있어보이셨는데, 삼년 전까지만 해도 계속 일을 하셨고 딸의 학비를 버시면서 지금은 집을 장만하셨다고 하시니 그 고운 얼굴에 가려져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세월의 흔적들이 대화에 묻어났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딸들 이야기를 해주셨다. 20년전 온 친인척이 서울로 와 국적까지 바꾼 아주머니는 중국에 남고 싶다고 했던 둘째 딸만 두고 한국에 오셨다. 첫째 딸은 한국에서 자라 지금 과일 가게를 하신다. 새벽부터 열심히 살고 있는 큰딸은 그녀의 엄마에게 떳떳할 정도로 자수성가하셔서 지금은 어엿한 두 아이의 버팀목이시라고 한다.
둘째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왔다. 혼자 사는 것이 쉽지 않았을 법도 하고, 가족이 있는 한국에 오라는 엄마의 권유에 어린 딸은 흔들렸을 것이다. 그래서 19살에 한국으로 왔고 짧은 시간안에 열심히 노력하여 당당하게 명문대에 합격했다. 본인의 장점인 중국어를 한 껏 살려, 중국어 강사, 과외, 통번역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더니 통번역 대학원에 당당하게 합격, 현재 프리랜서 통역가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하루에 100만원의 일당으로 통역하는 그녀는 나보다 무려 한살이 어리다.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의욕이 없고 무언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보단 짜증나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생각하여 이겨내야하는 것을 자꾸 묻어두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럴 때마다 다가오는 죽은 언니의 영혼이 나에겐 위로아닌 위로를 주었고 그래서 관악산을 올라 마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별 거 아니라면 아닐 수 있는 아주머니와 아주머니 딸의 이야기는 내 매너리즘에 찬물을 확 끼얹어 주었다. '정신차려라! 네 팔자도 참 개팔자다. 너는 가진게 그렇게 많으면서, 뭔 욕심도 덕지덕지니? 정신차려, 이것아!'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아주머니와 아주머니 딸들처럼 스스로에게 주어진 것을 감사하며 열심히 사는데, 나는 항상 그 것을 잘 까먹는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도, 해야만 하는 것도 많아 온갖 대회의 상은 휩쓸고 다녔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워야할 것만 같았다. 시골에 살 땐 시내로 나가고 싶었고 시내에 살 땐 서울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서울에 살게 되니 외국에서 살아야 잘 살 것만 같았다. 일종의 욕심과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한발 나아가면 무언가 낫겠지 하는 허영이 섞여있었다.
현재를 마주하지 않고 막연한 앞날만 생각해서 해결될 일은 없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것은, '지금' '현재' '이 자리'에 에너지를 쏟을 때 해결의 빛이 내 앞에 내려앉는다는 것이다. 머리로느 알면서, 남에게는 조언하면서 막상 내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한 내가 부끄러웠다.
삶의 태도에 있어 '노력'하지 않으면서 '결과'를 바라는 요행은 정말 비겁한 마음이라 생각한다. 나는 인생을 순탄하게 살아왔고 항상 운이 따라왔기에 내가 하는 노력보다 더 나은 결과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 덕을 쌓고 책을 읽고 교육을 받은 것인데 결국엔 내가 나를 실망시키고야 말았다는 사실을 관악산 등산로에서 만난 아주머니 덕분에 알게 되었다.
스쳐가는 인연이라 생각할지언정, 나에겐 아주머니의 고운 얼굴과 그래서 생각치 못했던 그녀의 치열한 삶,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열심히 사는 딸들의 이야기가 우연같지 않았다. 내가 고민하고 있던 통번역 관련된 일을 하는 작은 딸의 이야기도, 일찍 결혼해 엄마와 조화롭게 사는 큰 딸의 이야기도 톱니바퀴가 맞물려 가듯 나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에너지였다.
오늘 나는 결국 연주대까지 오르지 않았다. 산이 처음인 아주머니와 전망대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아주머니와 같이 내려왔다. 그의 영혼과 함께 하려 가져갔던 등산용 일회용 드립 커피는 아주머니와 나눠 마셨다. 류시화가 인도에서 숱하게 들었던, 모든 곳에 있다는 신이 아주머니였을 거라 나는 확신한다. 그의 영혼이 보내준 신과 함께 향긋한 커피를 마시고 나니 뇌가 한결 가벼워지고 마음 한구석 꽃 봉오리가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도, 고마워!
나의 오아시스, 나의 영혼, 새발자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