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찜

십 대의 건강에 나쁜 건 가장 나쁜 거잖아

by 수수
재료 : 김치, 돼지고기, 마늘, 파, 양파, 된장, 간 마늘, 설탕, 참치캔, 맛술, 간장
1 설탕, 간장, 맛술을 각 다섯 숟가락, 간 마늘, 된장 각 반 숟가락을 모두 물 한 컵에 섞는다.
2 냄비 바닥에 양파를 썰어 깔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쌓는다.
3 돼지고기보다 두 배 많은 김치를 돼지고기 위에 얹고 통마늘, 파를 넣어준다.
4 충분히 끓고 나면 맛을 보고 너무 시면 설탕을 넣고 싱거우면 간장을 추가하고 짜면 물을 추가한 후 참치캔 한 캔의 기름을 빼고 통째로 넣어 섞는다.
5 바닥이 누르지 않도록 잘 섞어 충분히 끓인 후 먹는다.
6 고기를 다 먹은 후 남은 찜에는 두부를 썰어 넣어 먹어도 좋다.

오늘이 수능이라고 한다.

내 인생에 한 챕터를 오롯이 그날에 쏟아부으면서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날로 보냈던 적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날 이후로는 잊고 지나가기도 하고

혹은 벌써? 그래서 춥구나! 하며 보냈던 것 같다.

수능을 치룬 날 내가 남긴 싸이어리

내게는 수험생인 사촌동생이 있다.

일본 입시를 보기 위해 내일 일본에 다녀가는데

덕분에 나는 한국에서 먹고 싶었던 간식과

책, 옷을 받을 수 있게 돼서 며칠째 설레는 중이다.

여기서 만날 삼촌과 사촌동생을 볼 생각에도, 물론!

오트밀과 어제 먹다 남은 김치찜w/두부 냠냠

사촌동생은 일본 입시만 준비한다고

의미 없는 수능은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수능에는 별생각 없이 혼밥을 하면서

늘 보던 유튜브의 수능특집을 보다가 그만 눈물을 쏟았다.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
이 부분에서 왈칵

사실 난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부모님의 압박도 거의 없었다.

원하는 전공은 실기시험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운 좋게 겨우(대기번호를 받아서) 대학교에 입학했다.


내신성적은 거의 바닥이었다.

과목별 전교 석차는 말도 안 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이유는 좋아하는 과목, 좋아하는 선생님 때문에

혹은 싫어하는 과목, 무례한 선생님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거의 제멋대로 공부했지만

부모님의 투자(돈과 기도 등등)와 운으로

좋아하는 전공 공부를 할 기회를 얻었다.

친구가 싸이월드에 올렸던 고삼이들 중에 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오랜 악몽은 학교였다.

학교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꿈은

초등학교 건물에서 중학교 건물로

중학교 건물에서 고등학교 건물로

12년 넘게 이어졌던 것 같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2012년에 내가 썼던 단편 소설 <벚꽃몽> 일부

굳이 그 원인을 따져 보자면 엄마는

성적에 대한 강요는 하지 않았어도

성실함에 대한 강요는 하셨던 것 같다.

결석, 조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심한 결막염으로 눈이 퉁퉁 부은 채 학교에 갔을 때

담임은 나를 집에 돌려보냈다.


아, 그 담임!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은 국어 담당이었는데

글짓기 대회에서 학년 대표로 나를 뽑아 놓고서

내가 잘해서 뽑힌 게 아니라

나머지가 너무 못해서 내가 뽑혔다고 말했다.

그 후로 나는 학교에서 하는 글짓기 대회를

전부 보이콧했다.

어차피 그런 내 마음 따위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지만.

갖고싶은 care bears

어린 시절 집 열쇠를 곧잘 두고 다녔던 나를

챙겨주고 돌봐주던 사람들은 대부분 학교 밖에서 만났다.


굳게 잠긴 현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나와서 거실 소파를 내어 주고

저녁도 차려 주셨던 앞집 아줌마,

작은 동네 서점에 오래 머무는 꼬마를 위해

카운터에 있던 의자를 가져다주시던 서점 아줌마,

아파트 라인 앞 계단에 서성일 때

나를 자기들 집으로 데리고 간 십몇층 고등학생 남매,

젖은 채 묶은 머리를 다시 말려서, 빗겨서 묶어주셨다는

친구네 할머니, 쌀쌀맞았지만 정 많던 문구점 아줌마,...


공중전화를 사용할 줄 알게 되고, 휴대폰을 갖게 되고,

번호키 현관문이 되기까지의 세월이 흐를 때 까지

나의 성장을 도왔던 고마운 어른들도 있었다.

응응응!!!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로 잠시 일했던 적이 있다.

1학년 병아리들이 한 학기가 지나면서

학교 제도에 딱 맞는 학생이 되는 과정을 눈으로 봤다.

비록 방과 후 교사지만 죄책감에 시달렸다.


온갖 과외도 했었다. 논술, 언어영역 등등.

내가 과연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싶어서,

입시 제도에 빌붙어 사기를 친 것은 아닐까 싶어서

아직도 생각하면 정말 죄스럽다.

초를 처음 밝힌 이들은 미선 효순이의 친구들, 10대 였다.

어른들은 뭐든 다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어른이 되면 뭐가 되든 되는 줄 알았다.

뭐가 되기는커녕 이 구조에서 쫓겨나지 않기를 바랄 뿐.

2014년 4월 이후로는 무기력함까지 더해졌다.

그 사건 이후 나 또한 그 세계의 어른이었다는 죄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세월만 흘려보내고 있다.

대학에 와서는 좋은 선생님들께 좋아하는 공부를 했다.


사실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데 나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당연한 거 아닐까? 왜 꼭 운이 따라야만 할까?

그리고 나의 12년이라는 시간은 왜 즐겁지 못했을까.

그 아름답고 그 귀한 시간을 왜 그렇게 보내야 했을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로 기억하는,

악몽으로만 회기 하는 그날들.


하루빨리 이 악연이 끊어지고

십 대들의 건강을 돌보는 진짜 선진국이 되면 좋겠다.

어쨌든 오늘은 고생한 수험생 분들과 가족들 모두

따듯한 저녁 보내시기를 바라며.

You are Worth more than t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