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회사 임원이 살아남는 방법
대표님 포함 세명일 때부터 일했던 나는
초기 멤버이기 때문에 회사에 많이 몰두하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누구나 가고 싶어했던 직장을 버리고 나왔기에, 더 열심히 한 것도 있다.
그것이 나를 갉아먹었고,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다.
이는 번아웃과 우울증등의 암흑같은 시간을
겪어낸 뒤 체득한 것이기에
그 과정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누구 한명에게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순수함에 상처를 내면 마음이 돌아선다.
어떤 대가를 바랬다면 순수함이 아니다.
순수함은 불순물이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광물과 같은데,
여기에 누군가 틈을 만들면 바로 깨져 버린다.
금이 간 상태로 형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닌, 깨져 버린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회사가 커가는 모습만으로
모든 고통들이 상쇄되던 시간이 있었다.
회사가 눈에 띄는 성장을 해 나가면서,
그 성장을 같이 느껴나가는 것만으로 벅차올랐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성장 뒤에는
지독한 성장통도 따라 붙는 법.
더 이상 자신을 몰아쳐가며 일하기에는 한계가 뒤따랐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적당한 환상이 있어야 한다.
부부 관계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그 선을 지키는 부부는 노년까지 행복할 것이요,
그 선을 서로 침범한 부부는 서로를 할퀴며 노년을 보낼 것이다.
회사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매일 다이나믹한 사건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작은 회사가 그렇듯, 그 때 그 때 순발력과 임기 응변으로
막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막고 난 후에는
그것을 어떻게 시스템으로 녹여 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그것을 잘 처리해 내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계속 그 사람에게 시키면 안 됐다.
물론 대표님은 너무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명 안되는 내부 구성원들에게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당장 바뀌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노력하고 있는 모습만 보여주면,
구성원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귀찮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여기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냐는 듯한 태도.
지금은 이해한다.
사람은 할 일이 너무 많으면 우선 순위가 밀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는
당장 급하지가 않다.
대표님과 거리를 뒀어야 했는데,
그런 날 것의 태도를 너무 가까이서 봤다.
보지말아야 할 모습들을 많이 봤다.
게다가 회사가 한참 잘 나가고 있을 때라
대표님은 다른 사람의 말을 더 안 들을 때였다.
내가 우러러봤던 대표님은 리더의 자질이 부족했다.
하지만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나 또한 결점 투성이인 인간인 것을.
적당한 거리감이 부족함을 가려줄 수 있거늘
대표님과 너무 가까이서 같이 일했던 나는,
그에 대한 환상이 점차 줄어들어 갔다.
직원은 반드시 대표에 대한 환상이 있어야 한다.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그 괴로움이
회사 밖까지 나를 따라왔다.
내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데, 심한 걱정이 나를 엄습했다.
그리고 내가 조금이도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든 회사에 더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나를 갈아 넣다 보니 나의 팀원들도 힘들어 했다.
내 앞에서 감히(?) 힘들다고 말할 수가 없었으리라.
누가 봐도 내가 용쓰고 있는 건 보였을 테니까.
게다가 지나친 책임감이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라,
그 책임감이 나의 다른 감정들을 잡아 먹어 버렸다.
희. 노. 애. 락의 감정들이 희미해져 갔다.
감정들이 희미해지니 삶이 무미건조해졌다.
회사에 있지 않는 시간에도
나는 회사에 있었다. 생각을 끊을 수가 없었기에.
어느새 나의 삶에는 '하고 싶다'는 없고
'해야 한다'만 있게 되었다.
집에서는 짜증을 내고 화를 많이 내는
부모요, 배우자가 되어 있었다.
출근길이 너무 고통스럽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자리에 앉으면, 똑같이 일을 했다.
집에 오면 소진된 에너지와 감정을 추스르는 것 조차 힘들었는데
그것을 외면하고 또 가정 구성원으로서 해야할 일들을 했다.
나는 책임감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니까.
어느 날, 나의 아이에게 미친듯이 화를 냈다.
그렇게 화를 낼 일이 아니었는데
비겁한 나는 아이에게 쏟아낸 것이다.
나의 감정 쓰레기통에 있던 것들을.
그것도 길길이 날뛰면서.
지독한 자기혐오가 나를 엄습했다.
그리고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아이를 위해서, 진료를 받고 먹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에 나온 구절을 읽는다.
저를 평온하게 하소서.
바꿀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게 하시고
바꿀 수 있는 일은 바꿀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지금도 나는 같은 회사에서 일한다.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더 이상 감정 이입하지 않는다.
회사 밖에서 회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한테 해주길 바라는 기대에 모두 부응할 수 없다고 나를 다독인다.
회사가 망해봤자, 그럼 그 기회에 좀 쉬면 되지. 라고 생각한다.
회사의 대표도 회사 자체는 아니다.
하물며 직원인 나 따위야.
이 단순한 진리를 왜 몰랐을까.
물론 지금도 여전히 나는 과거의 습성을 조금은 가지고 있지만,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약물의 힘도 있었다.
감정의 기복을 덜 하게 도와 주었다.
죽을 것 같이 힘든 시간이 없었다면,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계속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역시,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