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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Jul 02. 2021

처음


"맥주 좋아해요."


피아노 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수줍은, 그러나 한껏 설렘이 가득한 음성으로 얘기했다. 맑은 두 눈은 짙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 했다. 그녀와 마주 앉아 처음 맥주잔 너머 동그란 이마와 그 아래 단단하고 상냥한 두 눈과 마주친 그 날, 마음에 작은 그러나 분명한 파장이 일어났다.



그녀는 말수가 많지 않지만, 누구보다 깊은 이야기를 담담히 건넨다. 그녀의 단단한 열 손가락은 선율을 그려 그에 마음을 띄운다. 긴 시간 조잘재잘 온갖 형용어구를 붙여가며 그랬던 일을 이야기하는 나를 가만히 봐주다, 한 마디, 마음을 읽는다.


생각과 말이 그리고 움직임이 하나인 사람. 그녀는 내게 가장 좋은 친구이자, 언니이자, 삶의 쉼표이다. 처음이 그러했듯 지금도 여전히 같다. 짙고 깊고 맑다. 때로 다소 쓸쓸하고 줄곧 따뜻하다.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나의 처음은 어떤 기억일까. 그리고 바라본다. 맑은 호기심이 두 눈에 반짝이는 사람, 투명한 욕구가 하얀 뱃속에 그대로 비치는 사람. 어느 날 불쑥 마주친 당신에게 나의 처음이 이와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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