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맛있게 먹어주는' 착한 딸
엄마는 자주 아팠고, 아빠는 우리의 끼니를 챙겨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가끔씩 야식을 챙기는 것에서 아침과 도시락을 챙기는 것까지 싱글 대디 같은 아빠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쯤부터였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부지런했던 아빠는 이른 시각 일어나서 우리의 아침을 챙겨주셨다. 처음엔 아빠 솜씨를 맛볼 수 있는 단품 위주의 메뉴(떡국, 만둣국, 미역국)가, 즉석식품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는 다양한 종류의 즉석식품이 식탁 위에 올라왔다.
어느 날 아빠가 즉석 제품 메뉴 중 육개장을 끓여주신 날이었다. 작은 동그라미에 기다란 모양인 버섯이 찌개 위에 정성스럽게 올려져 있었다. 처음 보는 버섯이었다. 작고 귀여운 것을 좋아했던 시절이라 그 버섯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아빠는 팽이버섯이라는 설명과 함께 찌개 맛이 어떤지 물어보며 매우 자랑스러워하셨다. 끼니를 챙기고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는 바쁜 아침, 즉석 제품 위에 아빠의 사랑과 정성을 작게나마 표시하셨던 것이다. 아빠는 종종 아빠가 직접 끓인 찌개과 즉석제품 찌개 중에 어느 것이 더 맛있는지 물어보기도 하셨다. 가끔은 즉석 제품의 자극적인 맛이 더 끌릴 때도 있었지만 눈치껏 아빠가 직접 끓인 찌개가 더 맛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아빠는 "정말? 지난번에 아빠가 해준 게 더 맛있어?" 여러 번 되물으시며 환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셨다.
아빠는 우리가 성장하고 나서 즉석제품 덕을 많이 보았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바쁜 아빠의 일상에 아빠의 짐을 덜어준 고마운 제품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의 무게를 덜어준 것이 우리가 아니라 즉석제품이었던 것이 아빠에게 참 미안하다. 어른이 되기 전까지 나는 세상의 모든 어른은 아빠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른이 되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지런하고, 어렵고 위험한 일들을 도맡아 하고, 무서움이 없는 사람. 지나고 보니 자식에 대한 아빠의 노력과 정성이었을 뿐, 보편적인 어른의 소양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어른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 아빠가 싸준 도시락 반찬이 다른 친구들 반찬보다 모양새나 맛이 부족할 때는 마음 한 구석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먹기 싫은 반찬은 먹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가지고 왔다. 도시락 반찬 투정을 한 적은 없었지만 그렇게 무언의 불만을 표시해 본다. 남은 음식이 아까운 아빠는 도시락을 버리지 않고 반찬으로 드셨다. 아빠는 나의 소심한 반찬투쟁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셨다. 반찬이 많아서 남겨 온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세월이 지난 후에는 "싸준 도시락을 깨끗하게 먹고 와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라며 반찬투쟁은 커녕 반찬을 남겨왔었다는 사실조차 잊으셨다. 당신의 마음속에 우리에게 고마운 기억, 좋은 기억만 남기신 것이다. 그 시간, 무언의 투쟁을 했을지언정 철없는 반찬투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내가 실제로 어떤 아이였던가 상관없이 아빠의 기억 속에는 '도시락 맛있게 먹어주는 착한 딸'이라는 기억으로 남아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어떤 모습이든 아빠에게는 아빠가 기억한 딸로 남아있을 것이니 후회가 많은 지금은 그 또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