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단 함박스테이크 레시피
인스턴트 세계에 입문하다.
아빠는 늘 바쁘셨기 때문에 어릴 때 어딘가에 놀러 간 기억이 많지 않다. 어릴 때의 '놀러 간 기억'이라 함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를 의미한다. 수영장, 놀이공원, 동물원 같이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할 수 있는 곳. 부모님은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법정공휴일은 집에서 쉬는 날 그 이상이 아니었고, 공휴일이 끝나고 등교를 하면 휴일 어느 곳에 다녀왔는지 자랑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 나와 언니는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아 공휴일에는 집 밖에 잘 나가지 않게 되고, 약속을 공휴일에 잡는 것도 썩 좋아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성향을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서 더 놀라운 점은 어릴 때 자랑할 만한 곳들을 놀러 다닌 기억이 없는데도 나에게는 소중한 기억들이 참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가고자 열망했던 곳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지인들의 가족동반모임이나 친척들 집에 가는 일은 자주 있었다. 집 근처 유원지에도 자주 놀러 갔다. 어른이 된 지금은 소중한 기억의 일부이니, 어린아이가 생각하는 추억의 장소와 어른이 되고 난 후 추억하게 되는 장소에는 온도 차이가 크다.
서울 사촌 이모 댁에 갔을 때였다. 이모 댁에서 하루 밤을 묵고 아침 식사를 했다. 집에서는 먹어보지 못했던 납작한 함박스테이크가 접시에 하나씩 놓여있었다. 어릴 때 입맛으로 그보다 더 훌륭한 음식이 어디 있을까. 서울에서는 이런 것도 먹는구나 하는 마음에 맛있다 맛있다 감탄사를 연발했다. 부모님이 어떻게 만든 음식이냐고 레시피를 물어보자, 만든 것이 아니라 마트에서 산 즉석제품이란다. 참치캔이나 스팸도 아니고 함박스테이크가 즉석 제품으로 나온다니. 게다가 어느 곳에서나 살 수 있는 즉석제품이라니. 우리 가족은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고 시골에선 아직 판매하지 않는 제품일 거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온 며칠 뒤 아빠와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아빠는 하교 후 나를 데리고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구경하거나 간식거리를 사주시곤 했다. "오늘은 그 함박스테이크 있나 한번 찾아보자." 그날그날 미션수행하듯 하나씩 임무를 정하는 것도 아빠의 작은 습관 중 하나다. 우리는 즉석제품이 진열된 코너에 가서 서울에서 먹었던 그 제품을 찾아보기로 했다. 못 찾을 거라는 당연한 기대와는 달리 너무도 많은 3분 요리 시리즈가 예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동안 즉석제품코너에 들를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제품이 있는지 몰랐던 것뿐이었다. 우리는 몇 제품 다양하게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나는 시골에서도 맛있는 함박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속으로 기뻐했다.
집에서 해 먹는 요리보다 즉석제품요리를 더 맛있게 생각했던 철없는 나와는 달리 아빠는 다른 이유로 기뻐하셨다. 엄마가 자주 아파서 우리의 아침식사와 도시락, 가끔은 야식까지 책임지던 아빠는 이제 편하게 식사준비를 할 수 있겠다며 기뻐하셨다. 아빠는 그다음 날부터 3분 요리 즉석제품을 시연해 보셨다. 아침에 무슨 요리를 해주셨는지 기억에 나지 않지만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던 아빠 표정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너무 좋은 제품이라면서, 집안일이 정말 많이 줄었다며 기뻐하시던 아빠. 나 역시 못 먹어보던 요리들을 먹어보게 되어 당시에는 철없이 좋아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이 제품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긴 시간 인스턴트식품을 먹게 되니 이제는 직접 만든 음식에 대한 로망이 생겨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