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심야식당

뒹굴거리다가 출출하면 주문하세요.

by 카타

언니는 나에게 가장 좋은, 유일한 친구였다. 낯을 많이 가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나는 언니를 참 많이도 쫓아다녔다. 언니가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자, 언니는 내가 일부러 쫓아다니지 않아도 나를 '알아서' 잘 챙겨 다녔다. 어찌 보면 소중한 반려동물을 안고 외출하는 사람들처럼 친구집에 갈 때도, 하교 후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 먹으러 갈 때도 집에 들러 나를 꼭 챙겨서 데리고 가곤 했다. 나는 내 친구들 집에 놀러 가는 것보다 언니와 언니 친구집에 놀러 가는 것이 더 마음이 편안했다. 캥거루나 코알라의 새끼가 육아낭에서 느끼는 안락함은 이런 것일까 가끔 생각해 본다. 그래봐야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 않았지만 당시 나에게는 언니가 부모님 외의 보호자이자, 친구인 동시에 애착인형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우리는 둘만의 이벤트를 참 많이도 만들었다. 오락이나 보드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직접 만든 뽑기를 서로에게 시연하기도 했다. 상품은 주로 가진 것 중에 서로가 부러워했던 것, 또는 심부름해 주기 등등 내용은 다양했다. 뽑기를 뽑을 땐 자매끼리 하는 게임인데도 왜 그리 가슴이 두근두근하던지. '편지 쓰는 날'에는 팬시점에서 예쁜 편지지를 고르고 골라 서로 편지를 썼다. 쓰고 남은 편지지는 파일철에 하나씩 모아두었다. '선물의 날'은 한 달 정도 후의 날짜를 정하고 그날까지 모은 용돈으로 서로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갔다. 서로 어떤 선물을 샀는지 알 수 없도록 따로 계산하는 것이 규칙이라면 규칙이다.


부모님이 주무시기를 기다렸다가 일을 도모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새벽잔치'라는 이벤트는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를 준비해 두었다가 새벽에 먹는 우리 둘의 잔칫날이었다. 자명종 알람을 맞춰놓고 설렌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든다. 보통 새벽 1시쯤 일어나서 과자를 늘어놓고 만화책을 보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졸려서 못 일어난 날에도 있었는데 그런 날은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다.

핫케이크 가루를 알게 된 날에는 전기그릴을 방에 들여놓고 부모님이 주무시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몰래 만들어 먹는다. 달달한 빵 냄새가 어찌나 좋던지, 집에서 이런 요리가 가능하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기만 했다.


어떤 날은 밤늦게까지 이유 없이 깨어있는 날도 있었다. 둘이서 뒹굴거리다가 무언가 먹고 싶은 날.

"아빠한테 떡국 끓여달라고 할까?" 그런 날은 새벽에 아빠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아빠는 주무시다가도 새벽에 한 번은 일어나서 문단속이 잘 되었나 전기나 가스에 이상은 없나, 언니와 내가 문제없이 잘 자고 있나 늘 체크하는 버릇이 있으셨다. 우리는 아빠가 일어나서 우리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러 오기를 기다렸다. 아빠가 방문을 열었을 때 우리는 눈치 없이 "아빠, 우리 떡국 끓여주면 안 돼?"하고 묻는다. 아빠는 한 번도 귀찮다거나 힘들다거나 다음에 해준다거나 하시는 법이 없으셨다. "그럴까?" 하시면서 그때그때 있는 재료로 떡국이나 만둣국 같은 단품요리로 먹을거리를 만들어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에 늘 재료가 있었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어린 시절엔 그냥 그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우리 둘이 식탁 한쪽에 나란히 앉고 아빠는 반대편에 앉아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시곤 했다. 소중하고 따뜻한 일상의 기억이다.


어른은 당연히 그런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다. 친구가 딸아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빠가 안경을 쓰는 것을 보고 자란 친구 딸아이는 '남자들은 눈이 나쁘니까'하면서 당연히 남자는 안경을 쓰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어른은 당연히 아빠 같고, 모든 사람이 아빠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아빠란 존재를 통해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 사랑받고 사랑해 줄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전혀 특별하지 않았던 일상 속의 하루하루가 아빠의 노력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시간이었다는 것을 어른이 된 이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랑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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