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따뜻한 보온도시락

아빠의 어른아이를 만나다.

by 카타

아빠는 도시락을 준비해 주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아빠가 해왔던 일처럼.


어느 날 아빠는 보온도시락통을 사 오셨다. 퇴근길, 보온도시락통 성능이 떨어진 것 같다며 근처 상가에 들러 도시락통을 사 오신 아빠. 오랜 시간 들고 다녔던 도시락통이 괜스레 마음이 걸리셨나 보다.


나는 날씬하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새 도시락통이 정말 좋았다. 아빠가 새로 준비한 '나의 도시락통'은 찰스 슐츠의 만화 '피너츠'의 캐릭터가 그려진 겉주머니를 입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정말 좋아하던 만화영화다. 귀엽고 깜찍한 겉주머니에 손잡이가 있어서 더 정성스럽게 보였다. 그때까지 친구들은 겉주머니가 없는, 보온도시락 통 자체에 손잡이가 달려 있는 도시락을 들고 다녔다. 유행에 민감한 적 없는 사춘기 시절을 보냈지만 아빠가 사 온 도시락통은 내 마음에 꼭 들었다.


그전까지 아빠가 골라준 물건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빠는 제품의 기능을 우선시하는 분이라 늘 크고 튼튼해 보이는 물건을 고르셨다. 내색한 적은 없었지만 내가 직접 물건을 골랐다면 대개는 아빠가 고른 것과는 다른, 디자인이 예쁜 물건을 골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사 오신 도시락통은 아빠가(!) 고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내가 고른 물건처럼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 보온 성능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아빠는 나만큼이나 우리들의 새 도시락통을 좋아하셨다. 새 보온도시락통을 들고 등교하는 우리를 데려다주시며 흐뭇해하시던 모습, 아빠의 언어, 표정, 행동에서 내가 좋아했던 것 이상으로 아빠가 그 도시락 통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엔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표현할 수 없었지만 아빠는 나보다 더, 내 도시락 통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른이 된 이후 그때를 기억해 보면 새 도시락통이 생긴 나의 기쁨보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준비해 주는 아빠의 모습에서 더 큰 기쁨과 즐거움이 느껴진다.


그때의 기억을 오랜 시간 잊고 지냈다.


몇 년 전 어느 유튜브 영상 하나가 잊고 있었던 도시락통에 대한 기억을 소환했다. 부모님이 바쁘셔서 혼자 지내야 했던 어린 시절의 외로움이 어린 자식과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써 치유된다는 내용의 영상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빠가 생각났다. 어쩌면 언니와 나는 아빠 마음속, 자라지 못하고 있었던 어른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긴 시간 사랑받지 못했던 아빠의 어른아이는 나와 함께 새 도시락통을 챙겨 등교를 하고, 하교 후에는 아빠와 아이스크림을 나눠먹었을지 모를 일이다. 자식 키우는 일은 참 재미있다, 참 쉽게 키웠다 하셨던 말들이 당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어른아이를 보듬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는 우리와 함께 성장하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 행복을 찾아나갔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아빠의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면, 그런 의미로라도 내 역할이 있었다면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이전 08화즉석요리 위, 팽이버섯 가니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