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했던 서투른 도시락도 아빠를 닮아 점점 질서를 찾아갔다.
그렇게 아빠와 내가 아끼고 아끼던 보온도시락통은 생각보다도 훨씬 따뜻했다. 친구들의 도시락은 점심때쯤엔 미지근하게 식어있었지만 나의 도시락은 따뜻하다 못해 저녁때까지 뜨끈뜨끈했다. 그 성능이 놀라웠다. 아빠는 디자인과 성능 모두를 만족시키는 쇼핑을 마침내 완수하신 것이다. (드디어!)
아빠가 싸 준 도시락은 늘 한결같았다. 보온도시락과 보온물병. (보온물병도 도시락통과 함께 새로 온 신입이다. 날씬하고 두꺼운 헝겊옷을 입고 있었는데 나는 이 녀석도 보온도시락통만큼 아껴주었다.)
헝겊으로 된 도시락 겉주머니에는 작게 포장된 김이 들어있고, 도시락통에는 잡곡밥과 함께, 아침에 삶은 계란 한 알씩을 넣어주셨다. 친구들은 늘 계란이 들어간 내 도시락통을 보고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옥희가 생각난다고 야단이다. 그때까지 나는 계란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도시락통에 매일 들어있는 계란이 먹고 싶지 않았던 기억도 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계란으로 만든 요리를 정말 좋아한다. 어릴 때 매일 먹고도 지금 이렇게 계란 요리를 좋아하다니. (또 한 번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빠도 나만큼이나 계란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새로 장만한 보온물병에는 아침에 끓인 보리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팔팔 끓인 보리차는 혹시나 데일 위험이 있을까 늘 한 김 식혀 물병에 담아주셨다. 추운 겨울날, 따뜻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한 도시락과 보리차는 고민 많은 사춘기 소녀의 헛헛한 마음을 위로해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따뜻한 보리차를 컵에 따르고 후후~불어가며 적당한 온도로 식어가길 기다리는 그 시간은 마음을 고요하고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빠의 마음이 담긴 보리차와 평온했던 그 순간의 감정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