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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Feb 04. 2023

아이스크림 하나로 충분하다.

나와 꼭 닮은 아빠

 나는 어릴 때 성격이 내성적이라 혼자 어디를 가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준비물을 살 때도, 슈퍼에 가서 군것질 거리를 살 때도 늘 친구와 함께 가거나 가족들과 함께 가야만 했다. 물건을 사고 가격을 물어보거나 찾아야 하는 물건을 물어볼 때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동생인 나와 달라도 너무 달랐던 언니는 활발한 성격에 부모님이 사 먹지 말라던 불량식품도 적극적으로 사 먹는 아이, 늘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 보는 아이였다. 부모님한테 혼날만한 행동도 고민은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인 언니와 함께라면 무서울 게 없었다. 언니와 함께 행동할 땐 나 역시 고민은 잠깐 뿐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고집쟁이면서도 일단은 시키는 대로 직진하는 아이였다. 불량식품은 사 먹지 말아야 하고 오락실에도 가지 말라는 선생님들 말씀을 늘 준수했다. 단독일 땐 절대 문제행동(!)을 하지 않는 아이였다. (여기서 '문제행동'이란 어른들 보기에 귀찮은 정도의, 어른들도 한 번쯤은 해 봤을 법한 하찮고 귀여운 수준의 행동을 의미한다.)


 아빠는 그런 우리가 달라도 너무 달라, 고무찰흙처럼 하나로 반죽한 다음에 2분의 1로 똑같이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알 수 없게 태평한 첫째 딸과 이유 없이 예민한 둘째 딸. 우리는 각각의 장, 단점이 너무도 극명했지만 아빠는 우리의 성격에 맞게 훈육하는 맞춤형 아빠였다. 언니의 행동은 자제시키고 나의 행동은 늘 독려했다. 언니가 태권도학원에 보내달라고 말했을 때 아빠는 "뭘 또 때려 부수려고~"하면서 웃어넘기셨다고 한다. 반면 나에게는 진지하게 "우리 딸, 태권도 학원 보내줄까?" 하며 다정하게 권유하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학교 수업을 마친 후 친구들과 들로 산으로 놀러 다니는 첫째와는 달리 집으로 바로 하교하는 나를 안쓰러워하셨던 것도 우리 둘의 극명한 성격차이 때문이었다. 아빠는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다니는 둘째 딸이 군것질거리 하나 사 먹지 않고 집으로 직행하는 걸 아이답지 않다며 안쓰러워하셨다. (내가 무엇을 하든 무지렁이 같아 늘 걱정이 많았던 아버지다.) 아빠는 집에 오는 길에 과자가 먹고 싶으면 사 먹으면서 오라고 용돈까지 챙겨주셨지만 내성적인 나는 늘 집으로 직행했고, 보다 못한 아빠는 언젠가부터 내가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근처 가게에 데려가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주시기 시작했다. 아빠 일이 바쁠 땐 쭈뼛쭈뼛 발걸음을 옮겨 200원인가, 300원인가를 내고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와서 아빠와 함께 나눠 먹었다. 나는 늘 같은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콘 끝에 초콜릿이 달린 월드콘이란 아이스크림.  당시 인기가 있었던 쌍쌍바나 조스바같은 아이스크림보다 꽤 비싼 아이스크림에 속했는데 나는 크기가 크고 초콜릿이 달려있는 것이 좋아서 늘 월드콘을 먹었다. 그렇게 소중한 아이스크림을 혼자만 먹을 수 없으니 아빠 한 입, 나 한 입 하면서 나눠먹고 끝에 달린 초콜릿은 아빠 입에 넣어주곤 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마다 아빠와 함께 아이스크림 나눠 먹던 생각이 난다. 우리가 데칼코마니처럼 꼭 닮은 부녀지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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