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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Jan 31. 2023

응답하라 1988, 몽글몽글한 추억소환

나의 추억을 소환한다.

 고향을 떠나온 지 10년 만에 다시 고향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 올랐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풀빵을 구우셨던 할머니가 같은 장소, 같은 모습으로 풀빵을 굽고 계셨다.  할머니는 당시에 국물이 많은 떡볶이와 작은 어묵이 몇 조각 동동 떠있는 어묵국도 함께 판매를 하셨다.  우리는 기다란 나무 의자에 앉아 뜨거운 어묵 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먹었지. 국화빵보다 무른 느낌의 풀빵은 문제집이나 잡지책의 낱장을 무심하게 찢어 고깔모양으로 봉투를 만들어 넣어 주셨다. 당시만 해도 혼자서 뭘 못하던 시절이라 늘 언니와 손잡고 함께 가야만 안심하고 먹고 싶은 것을 골라 사 먹을 수 있었다.  

 고향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할머니는 10년 전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풀빵을 굽고 계셨다. 아마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당시에 나이가 많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언니와 나는 풀빵을 사 먹었다. 꼭 언니 손을 잡고 와야만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었던 꼬마가 좋아하던 그 풀빵이다. 긴 시간 잊고 있었던 추억이 발길에 '툭' 채인 돌멩이처럼 튀어나온다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감성적인 10, 20대를 지나고 나는 직장생활의 시작과 함께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내용을 담은 책, 영상 등에 빠져있었다. 충분히 감성적이었으니 이제는 다르게 살아보자는 다짐은 '필요를 먼저 채우라'라고 말하는  어느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주식, 부동산, 재테크, 앱테크, 짠테크 등 돈공부부터 해야겠다고 다짐한 이후 실용적이지 않은 것들은 내 삶에서 조금씩 지워 나갔다. 


  그렇게 자본주의의 돈공부에 심취해 있을 때 '응답하라 시리즈'는 인기리에 방영 중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재미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어도 텔레비전을 보지 않던 나는 무심했다. 영상 매체와 친하지 않았기에 드라마를 화제로 삼는 대화가 세상에서 가장 따분하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런데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응답하라 1988>의 요약된 영상을 무심결 클릭하게 되었다. 드라마 영상은  잊고 지냈던 나의 꼬꼬마 시절을 다시 소환했다. 


 친구들과 뛰어놀던 주택가, 골목길, 내가 읽었던 책, 잡지, 만화책, 텔레비전에서 나오던 가요, 군것질, 그 시절 그때의 우리 집,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보다 한참은 젊었던 부모님까지... 오랜 시간 곱게 봉인되어 있던 과거의 기억들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소중한 마음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더해졌다. 자본주의라는 묵직한 돌로 눌러 놓았던 감성이라는 고요한 마그마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쏟아져 나온다.  드라마를 통해 어른이 된 모습으로 마주한 나의 어린 시절은 참 따뜻했다. 그 시간을 함께 보낸 이들을 향한 감사한 마음도 잊지 않을 것이다.


  '즐거운 추억이 많은 아이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장처럼 우리는 행복한 기억만으로도 인생을 수정해 나갈 힘을 얻는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어른으로 성장하겠지만 어린 모습의 나는 여전히 그 시간 속 어딘가를 즐겁게 뛰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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