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고양이카페에 들렀다. 집에 이미 다른 동물들을 키우고 있었기에 고양이를 감히 들일 생각을 하지 못했던 때. 꼭 한 번은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럴 수 있을까 하던 때였다.
별 다른 것 없이 간식을 많이 준비한 것도 아니었는데 주위에 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옹기종기 모인 고양이의 관심을 받으면서 이 작고 연약한 존재의 동물에 대해 참 많은 오해를 하고 살았구나를 처음으로 경험한 날이었다.
러시안블루 녀석은 카페에 앉아 있는 내내 나의 무릎냥이가 되어주었다. 베푼 것 없이 과분한 호의를 보여준 고마운 녀석이다. 이렇게 살가운 녀석이라니. 정작 무릎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어 녀석의 사진은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한동안 녀석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녀석은 그런 성격 덕분에 내가 아니어도 또 다른 사람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을 거라고 위안을 삼는 수밖에.
사진에 가장 많이 찍힌 시큰둥한 표정의 검정고양이는 애교를 부리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양이들을 하악질 해서 쫓아냈다. 본인이 싫으면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면 될 것을 굳이 우리 옆에 지키고 있다가 다가오는 녀석들 하나하나를 어찌나 열심히 쫓아내는지. 꼭 우리 근처에 있다가 다른 고양이들에게 하악질이다. 자리를 몇 번이나 옮겼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쫓아와 다른 동무들에게 화풀이다.
옆 쪽에 앉아있던 녀석이 살갑게 다가온 다른 고양이에게 하악질을 하자, 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녀석의 발등을 살짝 때렸다. "이 놈! 어디 다른 고양이들을 괴롭혀!"
겉으로 보였던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게 당황한 눈빛을 하더니 이내 발등에 턱을 괴고 엎드리는 녀석.
그 모습은 왜 그렇게 또 짠하던지.
하악질과 발길질에 진심인 녀석이라 꽤나 난폭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쉬운 녀석이었던 것. 우리와 친해지고는 싶은데 그렇지 못하니 살가운 다른 동무들에게 질투가 난 듯하다.
언니가 조금씩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뚱한 표정이지만 싫진 않은 모양이다.
벌써 9년 전의 일이니 사진 속 동무들은 모두 고령의 노묘가 되었을 것이다. 나의 나이 듦이야 매일, 매년 한탄하는 일이지만 이제는 노묘가 되었을 사진 속 고양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묘하다.
9년 전, 나는 고양이 키우는 것을 열망했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2년 전,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는다고 다짐했을 때 오래를 만났다. 나는 충동적인 결정을 참 싫어하는 사람인데, 오래를 보았을 때만큼은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근거없는 용기가 튀어나왔다.
어쩌면 어떤 일이 시작되거나 일어날 때 깊고 넓은 사랑, 대단한 사명감이나 소명의식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없던 용기가 튀어 나온다.
모든 인연과 만남은 운명적인 사건이 없었더하더라도 운명이라는 요소가 섞여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긴 세월과 많은 인연의 확률의 곱하기'만큼의 작은 확률 중에 어찌 만남을 갖게 되고 인연의 끈을 이어갈까.
하지만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난> 운명이란 것이 분명 존재한다. 나에겐 오래가 바로 운명적 사건으로 만난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