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거나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있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쨌든 집 안에서 보면 나는 외출 중이었던 날, 특별한 이벤트 없이 심심한 어느 날 저녁이었다.
<딸기 사 왔으니 먹어라.>
아빠에게 문자가 왔다. 그 문자에 답을 내가 어떻게 했더라. 했는지 안 했는지조차 기억에 없다. 시시콜콜한 기억력이 대단히 좋은 나의 기억 속에 없는 걸 보면 나는 분명 무심했다.
늦은 시간 집에 들어와 보니 불이 꺼져있다. 모두들 잠이 들었거나 아직 퇴근 전일 수도 있겠다. 아빠는 밖에서 모임을 하고 술에 취해 잠이 든 모양이다.
나는 가족들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내 방문을 열고 불을 켰다. 그리고 내 책상 위를 보고 깜짝 놀랐지.
일찍 퇴근한 가족들 대신 빨간 딸기가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아빠는 딸기를 냉장고에 넣어두지 않고 빨간 플라스틱에 단단히 밀봉된 채로 내 책상 위에 올려두신 것이다. 영롱한 딸기 무리는 아버지의 지시대로 얌전한 모습 그대로 방주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소 무미건조하게 방에 들어섰던 나는 플라스틱 소쿠리 째 책상에 올려진 딸기를 보고 한참을 웃다가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딸기를 씻어서 먹기도 애매한 시간이었으니까.
다음 날 아침.
"아빠, 왜 딸기를 냉장고에 안 넣어두고 책상 위에 뒀어? 당연히 냉장고에 넣어둔 줄 알았지."
"너 집에 와서 먹으라고 책상에 뒀지."
"냉장고에 넣어두면 어련히 알아서 챙겨 먹을까!"
그날 이후로 빨간 플라스틱에 담겨 있는 딸기를 볼 때마다 책상 위에서 나의 퇴근을 기다리던 아빠의 딸기가 생각난다. 그 기억은 꽤 오랜 시간 나에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술 먹은 아빠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딸기를 내 책상 위에 턱 올려놓은 아빠의 술 주정은 왠지 모르게 귀엽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된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해 아쉬움을 담은 시시콜콜한 생각들.
만약 그날 내가 아빠보다 먼저 귀가해, 딸기를 사들고 퇴근하는 아빠를 반겨주었더라면.
딸기를 받아 들고 <안 그래도 딸기가 먹고 싶었는데!>라고 아빠가 좋아하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딸기를 깨끗이 씻어 술 취한 아빠와 함께 나눠 먹었더라면.
<딸기가 정말 달다. 다음에 또 사줘!>라는 말과 함께 그날 어떤 모임이 있었고 누구와 한 잔을 했는지 시시콜콜한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라면 아빠의 외로움과 지금의 나의 후회가 하루치만큼 줄어들었을 텐데 하는 생각.
지금도 반짝반짝 빛나는 붉은빛 딸기를 볼 때마다 오래전 아빠가 사 온 딸기가, 아빠가 보낸 문자에 담긴 외로움이, 딸기와 함께 나의 귀가를 기다렸을 아버지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