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살림을 도와주었던 LA갈비나 사골곰탕이 지겨울 때쯤, 아버지는 마트에 들러 크기가 제법 큰 굴비나 조기를 주렁주렁 사들고 오셨다.
"우리도 생선 좀 먹어야지."
그럴 때 생선은 꼭 오래 달인 보약 같은 느낌이다. 아빠는 생선을 살 때도 좋은 것만 취급하시는 까다로운 고객이었다. 배고픈 시절에 대한 한풀이는 자식들 입에 당신이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넣어주는 것으로 계속된다.
"아빠가 그래도 너희들한테 먹을 것은 좋은 것 많이 사 준 편이지?"
가끔씩 아빠는 당신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질문을 던지곤 하셨다. '많이 사 준 편'이라는 표현은 한참 잘못된 표현이다. 우리가 앞으로 평생 좋은 것만 찾아다니며 먹는다 해도 아빠와 함께 먹었던 요리들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가격대비 만족스러운 음식이 없어서 가성비와 가심비를 논하며 오히려 집밥 먹기를 자처한다. 그러니 아빠, 참으로 겸손하신 표현이십니다.
아버지의 꼼꼼함에 대한 일화야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일이지만 생선을 다듬을 때의 꼼꼼함은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다. 생선의 비늘과 지느러미, 꼬리까지 완벽하게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한 후에 비닐팩에 한 끼 먹을 만큼 차곡차곡 분리해서 포장한 후 냉동실에 보관한다. 물론 <생선구입 기념>으로 손질한 생선 몇 마리를 바로 구워 먹는 우리만의 행사도 빠지지 않는다. 생선구이는 늘 예쁜 튀김옷을 입고 바삭하게 구워진 상태로 접시에 담겨 식탁에 올라온다.
어릴 땐 아버지가 생선가시를 발라 제법 큼직한 살을 내 밥그릇 안에 넣어 주었다. 아마도 생선의 몸통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아빠는 아래위로 발린 잔가시, 얄상한 꼬리, 머리와 지느러미에 붙어있는 그런 살들을 알뜰히 발라 먹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면 당연히 그런 줄로만 알았던 시절이다.
"마트에 생선 좀 사러 가 볼까?"
아버지는 제법 큰 굴비가 판매하는 농협 직판장에 가자고 하셨다. 차를 타고 삼십 분쯤 달려서 도착, 바로 생선 코너로 향했다. <굴비처럼 엮여 있는> 굴비를 사들고 손질이 가능한가 물었더니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아버지가 난감해한다. 이제 집 안의 요리는 거의 내가 하는지라 내 눈치를 보시는 것이다.
"내가 손질하면 되지!"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아빠는 내내 손질하지 못한 굴비를 사 온 것을 미안해한다. 그렇게 새끼줄에 주렁주렁 매달린 꽤 많은 양의 굴비를 놓고 본격적인 해체 작업에 돌입했다.
집안 살림에 손 놓은 지 오래지만 여전히 우리 집에선 '맏며느리 감'으로 통하는 아버지가 돕기를 자처한다. 나는 한사코 만류하는데 당신의 본심은 미안함을 담아 당신의 꼼꼼함을 전수하고 싶으신 것이다. 나는 '아빠 못지않다'는 말로 아버지의 말문을 막히게 한 뒤 신성한 작업(!)을 시작했다.아버지가 꽤 오랜 시간 우리에게 생선을 먹이려고 해 왔던 작업이다. 아버지 마음에 들도록 최대한 깔끔하게 손질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번엔 당신이 한다고 하실 분이니까.
그렇게 생선 손질을 시작하게 된 나는 더 이상 생선구이가 두렵지 않다.
어느 날 저녁, 남은 잔업을 처리하느라 퇴근이 늦어졌다.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아버지가 나를 반기러 나온다. 아버지는 나의 하루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시고는 명절 선물로 굴비가 들어왔다는 말을 덧붙인다.
유난히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부엌 한쪽에서 꾸러미 모양의 상자를 들고 나오는 아버지.
주렁주렁 줄에 매달린 굴비를 꺼내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아빠! 퇴근하는 딸을 기다린 게 아니라 굴비 손질할 딸을 기다렸구먼!!"
아니라고 애써 부정하면서도 아버지는 멋쩍은 듯 웃는다. 도움을 자처하는 아버지를 만류하고 굴비 손질에 돌입했다. 어느 날부턴가 아버지는 더 이상 나의 굴비 손질을 못 미더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