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철엔 '꽃게'사냥을.

아빠의 정성으로 태어난 '간장게장'

by 카타



"꽃게 싱싱한 것 있나 보자!"


아버지는 꽃게철이 되면 마트로, 수산시장으로, 집 근처 전통시장으로 꽃게 사냥에 나섰다. 간장게장을 좋아하는 가족들을 위한 식량사냥이다. 살아있는 꽃게만을 취급하는 아주 까다로운 고객.


아버지가 꽃게를 고르는 기준은 크게 3가지다. 싱싱하게 살아있을 것, 크기가 클 것, 암놈일 것.

첫 번째 조건인 '싱싱'하게 '살아'있을 것이란 조건은 아빠가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단서'다. 크기는 무조건 큰 것으로만 취급한다. 가족들이 꽃게알이 가득한 게장을 좋아하기 때문에 늘 암놈인 것을 확인한다. 꽃게 암수를 구분 못하던 시절에는 엉뚱하게 속아서 수놈을 사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흔치 않은 실수다.







"꽃게 사 왔다!"

싱싱한 꽃게를 잡아오신(!) 아버지는 본격적인 손질 작업에 돌입한다. 아빠의 성격만큼이나 철두철미한 작업이 시작된다. 빳빳한 칫솔로 구석구석 꽃게를 씻어준 뒤에 커다란 통에 하나씩 정성스럽게 꽃게를 쌓는다. 꽃게 다리를 맨 밑층으로, 몸통은 양념이 밸 때 게살이 흐르지 않도록 방향을 잘 잡아주는 것이 포인트다. 엄마는 뒤늦게 간장을 끓이고 양념을 만들어 한 김 식히는 작업을 한다.


"엄마가 게장 담갔다!"

담근 지 하루 정도 지나면 참을성 없이 조금씩 맛을 보기 시작했다. 그때의 게장은 살이 잘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쫀득하고 양념이 완전히 배지 않아서 매우 심심하다. 하지만 나는 간이 심심하게 배어있을 때의 살이 무르지 않은 간장게장을 더 좋아했다. 그때의 간장게장은 정말 무한대로 먹을 수 있을 맛이다.


엄마가 더 이상 간장게장을 담그지 않게 되자 아빠는 게장 맛집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너희들 어릴 때 게장 참 많이 먹었지."


사실 게장의 포인트는 아빠가 우리를 위해 게장 살을 발라주는 작업에 있었다. 아빠는 게장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아침식탁에도 게장을 반찬으로 내어주셨다. 그때마다 먹기 힘든 게의 살을 발라서 그릇에 먹기 좋게 담아주셨다. 딱딱한 집게다리는 가위로 다리 방향과 같이 길게 잘라 살만 쏙 빼어 먹기 좋게.






요리를 한참 즐겨할 때쯤 어느 요리 블로거의 글을 읽다가 냉동꽃게로도 게장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살아있는 게가 아니라 죽은 게로 게장을 담근다고?> 이 사실을 전했더니 언니는 <설마~>하는 반응을 보인 후 몇 번의 검색 끝에 꼭 살아있는 게가 아니어도 게장을 담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꽃게 주문해 줄 테니 간장게장 한번 만들어 볼래?"

얼마 뒤 언니는 갓 잡은 꽃게를 주문해 줄 테니 간장게장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게장을 잘 만들기란 쉬운가 어려운가. 경험이 없으니 왠지 자신이 없었다. 언니는 오랜만에 좋은 꽃게를 만나볼 기회가 왔으니 용기 있게 주문한다. 이제는 내가 용기 있게 게장을 담가볼 차례.


지인들 중에는 게장은 비려서 잘 먹지 못한다는 이들도 많다. 나는 비린 맛은 싫어하지만 비리지 않게 잘 만들어진 음식은 잘 먹는 사람으로 스스로 정의한다. 운 좋게 비리지 않은 간장게장만을 먹어온 내가 게장을 담갔을 때 과연 그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까.






큼지막한 꽃게가 도착을 하고 이제는 아빠 대신 내가 꽃게 손질에 돌입했다. 매의 눈으로 관찰할 아버지에게 당당하기 위해 (아버지만큼!) 꽃게를 깨끗이 손질한 후 가지런히 통에 담는다. 작업을 마치고 만들어 둔 간장을 붓는다. 꽤 긴 시간이 걸린 작업이었지만 기록으로 남기면 단 몇 줄 뿐. 이제는 시간의 힘을 빌어 맛있는 간장게장이 완성되길 마음을 보태 기다릴 뿐이다.


그렇게 며칠 뒤, 간장게장은 전혀 비리지 않고 꽤 맛있는 게장으로 완성되었다. 엄마가 만든 간장게장만큼은 아니지만 처음치곤 훌륭했다. 어떻게 만들었냐고 신기해하는 언니. 사실 좋은 꽃게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가장 정성스러워 보이는 레시피를 골라 만들었다. 요리에 있어서 모두들 심플한 레시피를 선호하지만, 재료와 과정 하나를 생략하면 음식의 맛은 그만큼 덜하기 마련이라는 어느 요리사의 말씀 덕분이다.


"만들어 보니까 단순한 재료로 깊은 맛을 내는 게 절대로 쉬운 작업이 아니더라고. 나는 이것저것 재료를 넣었지만 엄마는 정말 간단하게 집에 있는 재료로만 만들었는데도 이것보다 훨씬 맛있었잖아. 그게 정말 쉬운 게 아냐."


언니와 함께 게 껍데기에 밥을 비비며 '간장게장 성공'에 대한 소회를 밝힌다. 모르는 이가 보면 경연대회에 출품이라도 한 것처럼 대사가 길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요리에서 가장 고되고 긴 시간을 요하는 작업은 바로 재료 손질에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요리의 정성은 재료 손질에 더 크게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 지나친 정성이 맛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할지라도.


아빠가 힘들게 손질한 꽃게는 엄마가 만든 양념의 마법으로 훌륭한 간장게장으로 완성되었기에 우리 가족 어느 누구도 '엄마가 만든 간장게장'이라는 표현에 이견을 제시한 적이 없었다. 우리들의 단순한 계산방식 덕분에 긴 시간 동안 꽃게를 사 오고 재료를 다듬고 뒷정리를 했던 아버지의 시간들은 게장을 만드는 시간에서 없었던 순간처럼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아버지 당신 스스로도 늘 '엄마가 게장 만들었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집에서 만든 게장을 맛있게 먹었던 세월 동안 아빠는 꽃게를 사 와서 손질만(!) 했을 뿐 간장게장을 만든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뒤늦게 그 시간이 얼마나 정성을 다했던 시간인가,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싱싱한 꽃게를 사들고 현관문에 막 들어선 아버지의 상기된 표정이 생생하다.


당신은 "아빠가 그동안 만들어준 간장게장은 정말 최고였어!"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차고 넘치는 분이었는데도.





아빠가 발견했던 어느 간장게장 정식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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