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요리책을 샀던 설렘을 기억한다. 레시피 탐색은 블로그와 요리 사이트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반값할인하는 유명 블로거의 요리책을 주문하고 기다리던 날. 어떤 책이든 내 책으로 사서 보는 것을 선호하면서도 실용서만은 실용서답지 않게 활용할 거라면 절대 주문하지 않으리라던 고집은 그렇게 인터넷 서점의 할인행사에 없던 일이 되었다.
요리그림이나 사진 보는 것을 유독 좋아하는 나에게 요리책은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책장을 하나하나 넘겨가며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쉬워 보이는 요리부터 하나씩 정복 해나기로 결심했다.
마치 '실용서답게' 보기 위해 이 책을 주문한 것이라고 증명이라는 해야 하는 것처럼. 나는 이렇게 사소한 일에 강박이 있다.
"빈대떡을 근사하게 부쳤네."
완성된 식탁 앞에 앉은 아빠의 첫마디. 아빠식 표현으로 오코노미야끼는 일본식 빈대떡이 된다.
아빠에게 마카롱은 동그란 과자, 베이글은 동그란 빵이다. 스파게티는 나름 정체성을 찾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이태리 국수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아빠는 학습력이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급할 땐 역시나 아빠식 언어가 튀어나온다.
"이건 뭐야?"
하늘하늘 춤을 추는 다랑어포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며 뚫어지게 관찰하던 아빠가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의 정체성에 대한 답 찾기를 포기하고 질문을 던진다. 아빠는 회를 먹은 후 횟감의 뼈로 끓인 매운탕에 우리가 먹은 횟감이 아닌 다른 생선뼈가 들어간 것을 지적해 낼 정도로 예민하고 관찰력 있는 미식가다. 그런데도 가쓰오부시란 녀석은 아버지에겐 너무나 낯선 존재였던 모양이다. 하긴. 나 역시도 요리책이나 블로그를 탐독하지 않았더라면 가쓰오부시란 녀석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아빠에게 새로운 음식을 알게 해주는 것, 새로운 맛을 알게 해주는 것이 좋았다. 그것은 내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었던 사랑과도 결이 같은 경험이다. 아빠는 동창회에 나가서도, 일터에서도 동창들과 다른 젊은이들이 낯설어하는 음식에 대한 경험이 많은 것이 우리 덕분이라며 고마워하셨다.
<녀석들이 처음 먹어본다고 하더라고. 나는 딸들이 해줘서 집에서 자주 먹는 거라고 했지.>
그렇게 이야기하면 다들 부러워한다는 첨언과 함께 아빠의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는 느낌이다.
내가 노년의 아버지에게 쌓아줄 수 있는 경험의 폭은 고작 그런 정도였을 것이다.
"가쓰오부시라고 생선을 얇게 썰은 거래."
"허허. 신기한 게 다 있네. 그래서 이거 요리 이름은 뭐냐?"
가쓰오부시에 대한 탐색을 마친 후에야 요리 이름을 궁금해하는 아빠.
"오코노미야끼. 일본음식이야."
나는 음식에 대한 정체성을 중요시하는 편인지 우리가 흔히 먹던 빈대떡과는 차별적인 음식임을 살짝 강조해 본다.
그리고 아빠는 생각지 못한 질문을 하나 덧붙인다.
"그래서 가쓰오부시는 무슨 생선이지?"
"....."
아마 나는 그냥 모른다거나 그냥 생선 아닐까라는 식의 대답을 했을 것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오코노미야끼를 처음 만들 때 나는 요리책에 나온 그대로 가쓰오부시로만 알고 있던 녀석이었으니까.
몇 년 후 오랜 공백을 깨고 마침내(!) 가쓰오부시가 가다랑어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빠는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애매한 답변으로 얼버무렸을 처음과 다르게 <가다랑어포라니까 가다랑어가 아닐까?> 라면서 휴대폰으로 생선의 사진까지 장착해서 아버님의 궁금증을 해결시켜 드렸다.
"더 먹을 수 있어?"
"그럼~더 먹지 그럼! 희한하게 자꾸 먹힌다. 아주 좋다!"
아빠는 그렇게 몇 접시 크게 부쳐낸 오코노미야끼를 맛있게 드셨다.
뭘 먹을까. 여전히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메뉴 고민을 하는 것이 하루 일과다. 내일은 무얼 먹자. 모레는 무얼 먹자. 나름의 계획이 있다. 며칠씩 냉장고에서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는 양배추가 생각난 언니는
"양배추 먹어야 하는데.. 오코노미야끼 어때? 시간이 오래 걸리나?"
나는 양배추를 주로 반 통씩만 사 왔었기 때문에 온전히 한 통을 산 경험이 많지 않다. 냉장고에 양배추가 무려 한 통이나 있다니 소비량을 늘리려면 일본식 빈대떡만 한 게 없을 것이다.
양배추를 찹찹, 호박과 대파, 베이컨도 찹찹 썰어 만들어 둔 부침반죽에 섞는다. 첫날은 길들여지지 않은 무쇠팬에 시도했다가 모양이 엉망이었지만 둘째 날은 번쩍번쩍한 그리들에 동그란 모양이 완성되었다.
마요네즈와 스테이크소스를 바르고, 그 유명한 가쓰오부시를 풍요롭게 뿌려준 후, 매콤한 맛을 위해 스리랏차 소스도 야심 차게 뿌려 주었다.
가쓰오부시가 여전히 하늘하늘 춤을 춘다. 냉장고에 양배추가 아직도 넉넉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풍족하게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다음 날도 일본식 빈대떡을 부쳤다. 이번엔 맥주도 함께 곁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