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유일하게 남들보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다. 우리는 집 근처 가까이 호수나 공원, 박물관 정도의 짧은 여행을 제외한다면, 숙박을 하는 장기여행을 함께한 기억이 많지 않다.
한참 해외여행이 붐이 일던 시절, 나는 우리 가족의 여행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몹시 아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생각해 보면 정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어떻게든 여행 갈 기회를 마련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삶을 가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라는 나름의 자부심이 생겼다. 요즘은 여행도 하나의 경력이 된 세상이지만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여행은 선택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단단한 추억들이 있다.
아버지는 언니와 내가 성장하면서 점점 부엌살림에서 해방되었지만, 두 딸이 직장과 대학생활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에도 빠지지 않는 가족만의 루틴이 있었다. 일종의 의식 같은 루틴. 바로 주말이면 지역 근교에서 맛집을 찾아 함께 시간을 보내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
아버지는 장어, 소고기, 회, 랍스터 등 주중에 알게 된 맛집으로 두 딸을 안내했고 우리는 주말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호사를 누렸다.
"이번 주에는 어디로 갈까? 먹고 싶은 것 상의해서 생각해 놓아라."
특별히 새로 발굴된 맛집이 없는 날에는 그동안 갔던 맛집 중에 가고 싶은 곳을 골랐다. 매일 먹어도 맛있었을 음식들이기에 새롭지 않아도 훌륭했던 날들.
"누구네는 외식을 안 하기로 했다고 하더라. 식구들끼리 먹고 싶은 게 달라서 의견일치가 안된다네."
다행히도 우리는 긴 시간 투닥거리며 합을 맞추어 온 덕분에 주말의 외식이 늘 즐거웠다. 메뉴를 함께 정해서 맛있게 먹고 뿌듯한 하루를 마무리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던 일상.
아버지가 찾은 맛집 외에도 언니가 찾은 맛집, 내가 가고 싶은 맛집 등 새로운 맛집을 찾아나가는 재미도 추가되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찾은 어른스러운 맛집이 아닌 젊은이들이 갈만한 패밀리레스토랑이나 퓨전음식점을 방문하는 것도 매우 신기해하며 좋아하셨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며 과거에서 온 사람처럼 말하는 아버지.
어느 날 아버지는 "언제 나주에 홍어를 먹으러 가볼까?" 하셨다. 두 말할 것도 없이 나주로 향해야 한다는 목표가 생겼다. (목적이 아니라 목표다!) 새롭게 발견한 맛집이 아니면 특별히 어떤 메뉴를 정한 일이 드물었던 아버지의 흔치 않은 요청이었기에 재빠르게 언니가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주로 향했다. 오로지 나주의 홍어를 맛보러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진정한 식도락가의 여행이다.
언니와 나는 시골에서 성장해서 어떤 음식에도 큰 거부감이 없다. 좋아하지 않더라도 만들어 준 상대방의 성의를 생각해서 맛있게 먹는 우리의 성향은 당신이 그렇게 키웠다는 아버지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까탈스러운 성향이었던 내가 어떤 음식이든 큰 거부감 없이 성장한 것을 보면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아버지가 충분히 자부할만한 성과다. 물론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선지해장국, 족발, 닭발, 미꾸라지 등 거부감 있던 음식들은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홍어도 그중 하나였다. 강한 암모니아 냄새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코를 막고 먹으면 수월하다기에 코를 막고 씹지 않고 꿀꺽 삼켜 버렸던 기억. 한 점이라도 먹여보기 위해 돼지고기와 홍어, 김치를 곱게 올려 입에 넣어주고 딸들의 표정을 살피던 아버지. 어느 순간 맛에 익숙해서 척척 먹게 된 우리를 흐뭇해하던 아버지. 그렇게 우리는 음식을 매개로 한 문화체험의 이력을 차곡차곡 쌓아왔고 나주여행은 그 경험의 방점(!)을 찍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나주에서 홍어 코스요리로 유명한 맛집이었다. 삼합과 홍어탕에만 익숙해 있던 우리는 하나씩 테이블에 새로운 메뉴가 올라올 때마다 감탄했다. 맛보다는 처음 접해보는 요리였기 때문에 마냥 어린아이들처럼 신기했던 것이다. 홍어라는 생선에서 이렇게 다양한 요리가 나온다니 '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새로운 문화체험이었으니까.
홍어 간, 홍어껍데기를 시작으로 요리가 하나씩 식탁 위에 올려졌다. 홍어무침, 홍어회삼합, 홍어살튀김, 홍어 전, 홍어찜, 홍어젓갈, 홍어애국을 차례로 맛볼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야말로 홍어판인 코스요리다.
이미 홍어회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인데 이쯤이야. 홍어무침, 삼합까지 나는 별 무리 없이 맛있게 먹었지만 문제는 코스요리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암모니아 향의 레벨이 올라가는 요리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홍어살튀김과 홍어 전은 생각보다 암모니아 향이 강했고 홍어애국은 살짝 미끌한 느낌이 있어서 홍어회를 잘 먹는 사람도 쉽지는 않은 메뉴였다. 맛있는 요리는 맛있게 먹고, 먹기 힘든 요리는 함께 웃으며 꿋꿋이 모든 코스요리를 마쳤다. 우리는 함께 음식에 대한 품평을 나누며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양치질을 한 후 나주역까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어린 날 먹기 싫었던 홍어를 억지로라도 먹어볼 용기를 내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코를 막고 씹지도 않고 삼키며 먹었던 삼합은 몇십 년 후 우리 가족에게 나주 여행을 선물했다. 아버지가 가고 싶은 곳에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 그 식도락 여행에 음식이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는 것. 그렇게 아버지와의 추억을 하나 더 추가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홍어의 냄새쯤이야 그 추억에 비할 데가 아니다.
아버지의 툭 흘리듯 스친 말에 머뭇거림 없이 바로 기차표를 예매해 준 언니, 까탈스러운 딸의 성격에도 꿋꿋이 홍어회를 먹여 준 젊은 날의 아빠와 먹기 싫은 홍어회를 마다하지 않고 먹어 준 어린 날의 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여행.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걸 생각지도 못했던> 과거의 어느 날에도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 둔 덕이다. 삼합의 앙상블만큼이나 조화로운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