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생활을 마치고 아버지의 유년기를 보냈던 도시로 이사를 온 후 LA갈비라는 녀석을 처음 맛보았다.
길쭉한 모양의 고기 안에 작고 납작한 뼈가 차례대로 붙어 있는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시골에서는 본 적이 없던 음식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LA갈비는 <도시음식>이었다. 이름까지 'LA'갈비라니 더없이 도시적이다.
그 시절 나는 시골에서는 볼 수 없었던 8차선 도로, 그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육교, 보행자를 위해 깜박이는 신호등, 마트에서 판매하는 수입산 과일 등 일상 곳곳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통해 '도시'라는 곳을 탐색했다.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살았던 우리 집은 어느 농촌의 읍내에 위치해 있었다. 부모님이 농업이나 축산업에 종사하는 집안의 친구들은 논과 밭이 푸르게 펼쳐진 곳에서 버스를 타고 함께 학교에 다녔다.
이런 농촌 지역의 특성상 지금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요리들을 볼 기회가 많았는데 메뚜기 튀김이나 개구리 튀김이 그것이다. 시골에서 자랐다고 이런 음식들이 모두 익숙한 것은 아니다. 나는 형체가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이 무서워서 먹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특히나 개구리 튀김은 개구리가 펄쩍 뛰어오른 모습으로 튀겨진 상태라 처음 보았을 땐 무척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음식도 시골토박이 이웃분들이 나눔을 해주실 때나 볼 수 있을 뿐 흔한 요리는 아니다. 오히려 직접 키운 소나 돼지, 닭 등이 흔한 곳이라 신선한 한우, 한돈, 선물로 잡혀온(?) 토종닭이나 오리들을 심심치 않게 먹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한우, 한돈의 가치를 전혀 알리 없는 나이였다.
긴 시골 생활에 길들여진 아버지는 오랜만에 당신의 고향에서 열린 동창회에 다녀오시더니 "도시 놈들이 한우를 안 먹고 수입산을 맛있다고 먹고 있더라."며 이상하게 생각하셨다. 인심 좋은 동네에서 이웃분들이 나누어 주셨던 한우와 한돈은 포장되지 않은 모습의 일상 그 자체였기에 우리에겐 좋은 것이라는 인식조차 없었음을 이사를 와서야 깨달았다.
알파벳으로 불리는 LA갈비를 나는 오랫동안 수입산 갈비로만 알고 지냈다. 사실 LA갈비는 갈비의 국적이나 출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녀석이다. 도시적이고 시골적인 것과도 아무 상관이 없는 중립지대의 녀석일 뿐. 어쩌다 LA갈비로 불리었을 뿐인데 나에게는 도시에서 만났다는 이유로 도시음식으로 포장되어 도시적인 느낌을 주는 음식이 되어 있었다.
LA갈비는 이사 온 도시에서 아는 분의 소개로(!) 처음 맛보게 되었다. 이사하던 날, 선물처럼 우리 집에 들어온 LA갈비는 고운 양념을 입고 납작한 통에 알뜰살뜰 포개어 있었다. 처음 보는 갈비 모양에 우리 가족은 모두 신기해했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마다 LA갈비를 찾아 나섰다.
"LA갈비 사 왔다!"
마트에서 LA갈비를 사 온 아빠는 마치 망망대해에서 커다란 고래라도 낚은 듯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아버지는 만들기 손쉬운 요리를 알게 될 때마다 몹시 기뻐하셨는데, LA갈비도 그중 하나였다. 양념이 쉽게 배고 잘 익어서 굽기 편하고 뼈가 잘 발려서 먹기 편하다는 이유로 다른 메뉴들을 제치고 우리 집 단골 메뉴가 되었다. 단순히 처음 본 '도시'음식이라는 이유로 좋아했던 LA갈비는 아버지가 다양한 요리를 시도해 보기 전까지 수시로 우리 집 식탁에 올랐고 어느 순간 먹기 지겨운 음식이 되어 버렸다. '일부러'는 아니었지만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아버지와 함께하는 식탁엔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올 추석, 언니가 명절상에 올리기 위해 LA갈비를 주문했다. 아빠와의 추억이 있는 음식이니 우리 집에선 다른 고기요리보다 명절 요리로 백점 만점 합격이다.
"정말 오랜만이다! 안 그래도 먹고 싶었는데.."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명절을 준비하며 한때는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 몹시 지겨워했던 LA갈비를 굽는다. 이제는 양념된 갈비를 구입할 수 있으니 굽기만 하면 완성되는 밀키트처럼 간편하다. 직접 구워보니 아빠 말처럼 금방 익어 굽기도 편하고,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기도 편하다.
넉넉한 양의 갈비를 정성껏 양념한 후 뿌듯해하던 아빠, 늘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잘라서 식탁에 놓아주던 아버지를 생각한다.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앞으로 쌓아갈 새로운 음식들에 대한 기대보다 그리워할 일들이 훨씬 더 많을 기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