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그 겨울은 따뜻했다
“도장으로 오세요.“
퇴사하던 날, 출근한 지 몇 분만에 백수가 되고 관장님께 처음 받은 톡이었다. 쫓겨나듯 짐을 챙겨 도장으로 갔다. 그날부터였다. 매일 도장에서 운동하면서, 쉬는 시간에는 관장님을 도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아가들을 데리러 갔다.
“저 검도 시작한 김에 사범도 해 볼까요?”
관장님과 시합에 같이 나갔던 분들 앞에서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한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정말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어차피 집에 있어도 부모님과 마주치면 마음이 편치 않았기에, 차라리 밖에서 이렇게라도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나았다.
유치원에 다니던 꼬마 아가씨 한 명이 있었다. 검도관에 올 때마다 관장님께 얼마짜리 과자를 사달라, 그전에는 운동하지 않겠다며 어지간히 생떼를 부려서 관장님 혼을 쏙 뺐나 보다. 관장님께서 따로 별명을 지으셨을 정도였다. 고집도 얼마나 센지 보통이 아니라며 종종 고개를 저으시기도 했다. 그 꼬마를 처음 만난 건 그때였다. 어느 날 저녁, 관장님과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서 동네 유치원에 들렀을 때였다.
“해달샘, 나 여깄을 거니까 해달샘이 가서 OO 좀 데리고 올려?“
“네? 제가요?“
“어, 내가 가면 가기 싫다고 떼쓰고 막 울어서…… 부탁 좀 할게.”
저, 관장님, 저도 얘 처음 봐요.
얼떨결에 결혼도 하기 전에 어른이 돼서는 처음으로 유치원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여기군. 우선, 유치원 선생님께 허리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OO 데리러 왔습니다.”
라고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께서 정문 앞에 주차된 차량을 보고
“아, 검도관 사범님이시구나, 잠시만 기다리세요.”
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문 너머로 바라보니, 한 여자 아이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지만, 관장님 대신 웬 여자 어른이 하얀 패딩을 입고 자기를 데리러 왔단 것에 놀란 것 같았다.
“안녕, 네가 OO구나? 가자!”
그리고 그 아이와 함께 손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어서 와요.”
첫 만남의 어색함은 잠시였다. 그날부터 이 꼬마 아가씨를 데려오는 건 내 몫이 됐다. 관장님께서 내가 데리러 가니까, 얘가 울지도 않고 내 손도 잘 잡고 걸어온다며 아예 맡겨버린 것이다. 어느 날엔 유치원 선생님께서도
“OO가 사범님이 좋은가 봐요. 오시기 전부터 언제 오냐면서 기다리고 있어요. “
라고 하셨다.
“아, 그런가요? 네……“
의아했다. 난 그냥 유치원에 와서 안녕, 인사하고 검도관에 도착해서는 운동 시작 전까지 바닥에 앉아서 같이 그림 그리고, 잠들면 패딩으로 덮어 주고, 얘가 얘기하는 거 들어준 것밖에 없는데.
그 꼬마 아가씨에겐 1살 위 오빠도 있었는데, 이 친구도 특이했다. 처음에는 관장님께서 이 친구도 혼자서 데리러 가셨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 친구도 날 찾는다고 하셨다. 검도관에서 얼굴 몇 번 본 게 다인데요?! 그렇게 이 머슴아도 내가 맡게 됐다. 차 안에 내가 있는 걸 보면 냅다 안길 때도 있었고, 하루는 내 옆에 앉겠다고 동생과 투탁 투닥 다투기도 했다. 이유는 모른다. 이 친구도 검도관에 있을 때는 같이 그림 그리고, 뭘 얘기하면 들어준 것밖에 없다. 이 남매는 관장님 말은 안 들어도 내 말은 들었다. 어쩌다 내가 검도관에 없을 때는 언제 오냐면서 울었다고도 한다. 이것도 왜인지는 모른다. 어떤 날에는 머리 묶는 고무줄이나 만화 캐릭터 키링을 선물로 갖고 오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그러다 몇 달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남매는 더 이상 검도관에 오지 않았다. 지금이 2025년 여름이니, 벌써 2년하고도 반이 좀 넘었다. 지금 이 아이들도 초등학교 3~4학년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해 겨울은 세상을 등져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차갑고 잔혹했다. 하지만 얼어붙었던 날 따뜻하게 품어주신 어른, 관장님 덕분에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나를 좋아하고 따라준 그 남매로부터도 참 많은 위로를 받았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또 한차례 크게 방황하던 그 겨울, 위아래로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면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날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아이들이 올 여름도 잘 보내고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