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깨어진 사랑 속에서 깨어난

by 이면

평범함에 오롯이 감사하기도 전, 나는 그저 다행이라 생각했다. 방문조차 힘겹게 열던 동생은 어느새 현관문을 가볍게 드나들기 시작했다. 시작은 집 앞 편의점이었다. 편의점에 가는 길가에서 바람을 맞고, 꽃을 들여다 보고, 풀내음을 맡았다. 동생은 자연이 주는 온기를 만끽하며, 가족에게서만 느끼던 다정함을 이제 밖에서도 조금씩 찾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 틈에서 각자의 아름다움을 만날 준비를 시작해 갔다. 천천히 일도 관계도 도전해 갔고, 동시에 가족이 주는 온도만큼 타인에게 기대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도 동생에겐 묵묵히 감내해야 하는 과제가 되기도 했다. 어떤 날은 누군가의 악의 없는 시선과 말에도 무너지곤 했다. 그저 언제나처럼 다시 살아내고자 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동생은 마치 보이지 않는 중환자실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동생이 중환자실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저 필요할 땐 언제나 어깨를 내어줄 뿐이었다. 어느 날 동생이 내 한쪽 어깨에 기대며 조용히 읊조렸다. '고마워.' 조그마한 소리 조각 하나, 둥근 모서리를 가진 내 어깨 온기 하나. 그 낭만에 기대어 동생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더 고맙다고, 그리고 네가 스스로 해낸 것이며 정말 잘하고 있다고, 무엇보다 정말 고생 많았다고.


어느 여름날, 우리는 연희동에서 데이트를 했다. 합정역 출구를 나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였다. 동생은 내 손을 이끌며 잠시 나를 따라오라며, 위풍당당하게 앞장섰다. 동생이 이끈 곳은 어느 꽃집 앞이었다. 예쁘게 피어있는 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분홍색 장미꽃 한 송이를 골라 내게 건넸다.


언니에게 꼭 한 번 선물하고 싶었어


낭만이란 이런 거지. 깨어진 사랑 조각을 모아 보드라운 하루를 만드는 것, 그것이 낭만이지. 우리는 그렇게 우리만의 '자매 낭만'을 만들었다. 어쩌면 낭만이나 사랑 같은 말은 연인이 아닌 가족에게 더 어울리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성스러움이 깃든 '고백'이라는 단어에, '사랑'을 붙인다는 건 실로 엄청난 시간들을 함께 했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그저 같이 시간을 보낸다고 깊은 시간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때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동생의 시간들도, 동생에게 학교폭력을 가했던 이들의 시간이 동생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시간은 망가뜨릴 수 없었던 것처럼.


방문이 아닌 현관문을 여는 동생을 보며, 사랑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간절히 또 간절히 바라곤 했다. 소중한 존재를 잃을 뻔한 그 두려움은 부디, 사회가 그녀에게 다정하길 바랄 뿐이었다. 학교라는 사회에서 그토록 힘든 시간을 보냈던 동생은 다시금 그 사회에 들어가야만 삶을 살아갈 수 있었고, 그러기 위해선 그 많은 상처에서 불구하고 동생이 먼저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억울했다. 그럼에도 다시금 함박웃음을 짓는 동생을 바라보며 이젠 사랑 속에서 살길 바랄 뿐이었다. 개인이기도 하면서 사회공동체 일원이기도 한 우리가 사랑사회를 만들어가길 바랄 뿐이다.


그 꽃집에서, 동생은 내게 꽃 한 송이를 건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눈에 맺히는 눈물을 구태여 가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괜찮아졌다. 우리 역시 함께 살아가며 웃음과 눈물을 구태여 가리지 않길 바랐다. 그 마음들이 서로를 무너뜨리는 대신 서로를 낭만적이게 대하길 바랐다. 그래서, 동생을 더 포근히 안아주었으면 하는, 내 간절한 이기심이기도 했다. 그 마음으로 우리는 어느 작고 아담한 반지하 카페에 들어갔다. 적당히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또 그렇게 자매낭만을 하나 더 만들어 갔다. 아니,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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