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아빠, 악마 아빠

by 이면

아빠는 언제나 다정한 사람이었다. 표현은 서툴렀을지언정 그 속에 담긴 애정만큼은 늘 선명했다. 발렌타인데이가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는 걸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알게 된 건 순전히 아빠 덕분이었다. 기념일이면 어김없이 현관문 앞엔 세 개의 초콜릿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엄마의 것은 늘 가장 크고 화려한 하트 모양 페레로 로쉐였고, 나와 동생의 몫은 소박한 가나 초콜릿이나 아몬드 초콜릿이었다. 내 것이 작다며 투덜거린 기억은 없다. 그저 듬뿍 받는 달콤함이 나를 오래도록 행복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엄마를 지극히 사랑하는 아빠가 듬직했고, 우리를 귀히 여기는 아빠가 그토록 따뜻했다.


우리를 ‘딸랑구들’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김아빠’라 소개하던 아빠는 참 행복해 보였다. 엄마의 등 떠밀림에 못 이겨 우리를 체벌해야 할 때조차 공포스럽지 않았던 건, 우리가 아빠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수백 가지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대처법이 있었던 게 아니라, 아빠는 우리 앞에서 늘 속절없이 약해지는 사람이었다. 한없이 강하고 커다랗던 아빠도 우리 앞에서만큼은 기꺼이 ‘눈사람’이 되어주었다. 아빠는 언제나 천천히 녹아내리는 눈처럼 고개와 몸을 우리 쪽으로 숙여주었고, 우리는 그 마음을 녹이는 햇살이 되어 아빠 곁에 머물렀다. 아빠라는 눈사람은 늘 내게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훗날 엄마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다섯 살 무렵 아빠가 내 엉덩이를 처음 때린 날, 나는 아빠가 내겐 그럴 수 없다며 밤새 울었다고 했다. 엇나가려는 다섯 살 난 딸랑구를 올바른 길로 이끌려했던 아빠의 야단이었지만, 그땐 그 간절함이 내게 와닿지 못했다. 세상이 외로웠던 나는 그저 야단치는 아빠를 보며, 아빠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은 무력함이 되었고, 천사 같은 아빠는 내게서 악마가 되어갔다. 여느 때처럼 몸을 내 쪽으로 기울였지만, 그날 아빠의 얼굴엔 웃음 대신 눈물이 있었다. 환하게 웃던 아빠가 단전에서부터 슬픔을 끌어올릴 때, 아빠의 햇살이었던 나는 어느새 울음을 아랑곳하지 않는 잔인한 칼바람이 되어 있었다. 아빠가 주던 사랑이 따뜻하고 깊었던 만큼, 상실은 잔혹하게만 느껴졌다. 그리하여 나는 아빠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래야만 사라져 가는 사랑의 고통을 그나마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 12화이젠, 깨어진 사랑 속에서 깨어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