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지내온 것

by 이면

아빠는 다정한 사람이었고, 못지않게 성실한 사람이기도 했다. 아빠에게 들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아빠는 어릴 적 할머니를 따라 시장에 나가 계란을 팔고, 채소를 팔며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조그만 손에 쥐어진 동전 몇 닢은 언제나 허투루 쓰지 않고 저축했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을 것이다. 아빠는 주변 사람의 권유로 냉장고를 수리하는 기술을 배웠고, 이후에는 안경알을 제조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동전 몇 닢부터 차곡차곡 모아 온 재산은, 작은 마을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를 살 수 있을 만큼 태산처럼 쌓여갔다. IMF 때 아빠는 실직을 당했다. 당시 부모님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집 안에 흐르던 공기가 심상치 않다는 건 어린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아빠는 개인택시를 시작했고, 다시 한번 당신의 성실함으로 재산을 모아 신도시의 34평 아파트를 매매할 수 있을 만큼 일어섰다. 어느 날 아빠가 내게 말했다.


우리 딸, 이제 아빠가 손주 생기면 웬만한 건 다 해줄 수 있겠어


인생을 이만큼 살아왔다는 자부가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그 말은 이제 쉬어도 된다는 선언일 수도, “아빠는 여행 갈 거야” 같은 문장일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아빠는 다시 무언가를 내어주겠다는 쪽을 택했다. 매번 받기만 해서, 받고 있다는 감각이 무뎌지기도 했던 것 같다.

철없던 시절, 그 무뎌진 감각은 무책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빠는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대학교 기숙사 건물 안에 작은 만화방을 열었다. 한 권에 300원에서 700원 남짓한 대여료로는 아르바이트생을 둘 여유가 없었다. 아빠는 내게 도와달라고 했지만, 나는 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그때도 아빠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답답함과 불편함을 말 대신 삼키고 또 삼켰다. 만약 그때, 내 무책임함을 그때 조금이라도 따끔하게 꾸짖었다면,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아니 그보다 아빠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아빠가 조금씩 도와달라 말하게 되었을까. 나는 여전히 이토록 주기만 하는 아빠 앞에서 이렇게 철부지가 된다. 철부지인 나는 이 글로 아빠에게 죄송했다 고백하는 동시에 원망하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기대고, 보채고 있는 딸인 것만 같다. 그럼에도 더 이상 철없는 딸로만 남고 싶지 않아, 가만히 존경을 마다하지 않는다.

얼마나 절실한 성실함이었기에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만화방까지 꾸려갈 수 있었을까. 얼마나 외로운 책임감이었기에 도움을 청하는 말마저 삼킬 수 있었을까. 얼마나 묵진한 사랑이었기에 주는 것만이 당연한 일생이었을까. 그렇게 묵묵히 견뎌내기 위해, 아빠는 무엇을 잃어야만 했을까. ‘아빠’라는 개인이 ‘가족’이라는 한 사회를 감당하기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에 수렴한다. 개인이 감당해서 안 될, 감당할 수 없는 무게는 결국 아빠라는 개인의 정신이 혼미해지는 건 예삿일인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아빠는 환상을 따라서라도 날갯짓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여리디 여린 나비가 되었다. 거짓말처럼 햇살이 눈부시던 어느 날, 그 나비에게 새겨진 진단명은 ‘중독’이었다.

이전 13화천사 아빠, 악마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