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관계에서의 책임과 개인의 자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휴식시간이란 온전히 자유로운 시간이다. 휴식시간은 그야말로 경쟁, 의무, 책임에서 벗어나 내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식’ 또한 자기 결정권 안에 있는 권리이다. 의무와 책임이 내 삶에 전체가 되어서도 안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아직 한국사회는 ‘노동’이라는 의무와 책임 영역이 개인의 휴식시간을 너무 가볍게 침범한다. 하지만 이러한 양상은 비단 ‘사용자-기업’ 관계뿐 아니라 ‘개인-개인’ 관계에도 개개인의 휴식의 권리침해가 자연스럽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경제공황(1930),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1949~1950) 사회경제적 안정에 초점을 맞추며 개인의 권리나 노동자의 목소리가 비교적 후순위로 밀렸다. 이후 경제가 회복된 뒤에는 개인자유의 가치가 사회성장적 가치가 우선시되며 정책이 개선되었다. 경제적 성장이 시급 할 때는 개인과 노동자의 목소리가 비교적 덜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은 경제성장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인자유의 가치보다 사회성장적 가치가 우선시되고 있다.
원인 중 하나는 권위주의 사회에 억눌린 개인의 가치에 대해 대중이 주도하는 사회적 성찰이 없었다는 것에 있다. 미국과 독일은 스스로 권위주의 사회에 억눌려 있다는 것을 알았고, 미국은 영국으로 독립하면서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가 헌법적으로 보장되는 과정이 있었다.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68 혁명을 계기로 권위주의 사회를 비판하며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두었다. 반면 한국은 독재정권 이후, IMF 사태로 인해 개인의 자유와 표현에 대한 논의가 다시 소외되었다.
사회적 관계에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사회, 그리고 아직은 정치권부터 사회전반에 권위주의가 만연하다는 가정으로 한국사회를 재조명해볼 수 있다. 여전히 회사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에 따라 개인이 회사에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회사의 충성심을 재단하는 경우가 있다(사실 노동자에게 충성심을 요구하는 것도 전근대적인 가치이다). 노동자가 원해서 그만두는 경우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일을 해야 하는 의무는 있지만, 일을 하지 않을 자유는 없는 구조다. ‘연인’이라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와 보내는 시간에 따라 상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연인의 애정도를 재단하곤 한다. 이러한 현상들로 개개인의 휴식이라는 권리가 사회의무 관계에서 충분히 제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역할, 의무, 책임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가치다. 이러한 사회적 가치는 높은 수준의 이해를 바탕으로 공유되고 있으며, 이번 탄핵 시위가 이를 잘 보여준다. 국제사회에서 높은 민주주의 의식을 가진 나라로 평가받는 만큼, 이제는 개인의 자유, 표현, 선택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정책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곧 탄핵 시위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