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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리크 Oct 26. 2022

카투사 훈련소 3부

카투사 훈련소 (KTA)

KTA 2주 차

  KTA에서의 처음으로 월요일을 맞이했다. 늘 그렇듯 새벽 4시에 기상해 아침 PT 나갈 채비를 했다. 강당에서 또 행사가 있는지 PT집합을 밖에서 했다. 운동은 안 하고 내일 있을 2-2-2 Assessment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겨울 야외는 유난히 추워서 그런지 남극의 펭귄 마냥 훈련병들이 서로 바싹 붙어 있었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살을 애는듯한 추위가 힘들었다.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KTA에서 보는 첫눈이라 기분이 묘했다.

미군복 플리스 자켓


  숙소로 돌아와 군복으로 환복을 하려는데 갑자기 화재 경보기가 울렸다. 날이 너무 추워져서 플리스를 입고 나갈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안된다고 그래서 맨몸으로 뛰쳐나갔다. 모든 훈련병들이 밖으로 모이는데 30분 정도 걸렸다. 미군 교관한테 엄청나게 깨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군기를 잡으려고 한 행동인 줄 알았다. 저 멀리서 들리는 소방차와 앰뷸런스의 소리를 듣곤 그냥 한 소리가 아녔음을 알았다.

  엄청나게 긴 오전 일정이 끝나고 아침식사 뒤 수업을 들었다. 카투사에서 듣는 첫 수업이였다. 처음으로 수강하게 된 과목은 ELT(English Language Training)였다. 수업은 10명씩 한 반으로 진행되고 이 과목의 경우 모든 강사가 한국인이었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육군에서 퇴역하고 영어성적이 높은 사람들이로 배치되었다. 우리 분대 담당 강사분은 육군 중령으로 은퇴하신 분이셨다. 수업 내내 한국말없이 영어로 진행되었다.

  아침 내내 얇은 옷차림으로 밖에 서있어서 그런지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기침은 심해지고 고열과 함께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일단 점심시간까지 참아 보려 했다. 점심시간에 대열을 갖춰 식당으로 가는데 우리 PG(Platoon Guide;분대장 훈련병)이 안보였다. 대충 들어보니 이빨 2개가 빠져서 병원에 갔다고 들었다. 내가 그를 대신해 임시로 PG를 담당했다. 몸이 너무 안 좋은데 인원들을 인솔해야 해서 힘들었다.

  아픈 게 더 심해져서 불침번도 빠졌다. 내 룸메이트가 나를 대신해서 불침번을 맡아줬다. 어제보단 컨디션이 나은 거 같은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어제 설명해줬던 2-2-2 Assesment(2분 팔굽혀펴기, 2분 윗몸일으키기, 2마일 달리기)가 예정 되어 있어서 걱정이다.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시험을 보러갔다. 다행히도 카운팅을 잘해주는 담당관을 만나서 팔굽 15, 윗몸 38개를 했다. 2마일은 실신할 것 같아서 빼 달라고 요청했다.

2마일 to 킬로미터


  너무 안될 것 같아서 빼 달라고 한 것을 미군 치프(Chief;훈련소 최고 담당자)가 들어서 약한 놈은 필요 없다며 나한테 욕을 한 바가지 하더니 자리에 앉으라고 명령했다. 한국군 교관한테도 말했더니 안 아파 보이는데 꾀병 부리지 말라며 나를 나무랐다. 나도 어지간하면 뛰려고 했지만 그런 게 아니었는데 서러움이 복받쳤다. 뭘 하든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는데 말이다. 그나마 좀 나았던 건 논산 때 동기가 함께 2마일을 빠져서 서로 말동무가 되어줬다.

  2마일 이후 의무대 가고 싶은 사람들을 지원받았다. 몸이 하도 안 좋아서 나도 신청했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한국군 군의관을 만나서 현 몸상태에 대한 얘기들을 했다. 기침, 감기에 대한 설명과 소변도 콜라색이란 말을 하니 군의관이 당장 외진 갈 준비를 하는 게 좋아 보인단 말을 남겼다. 진단 후 30분 정도 남아서 숙소에 올라갔다. 시간이 애매해서 다음 수업을 듣기 위함이었다. 

  다음 강의 시간에 맞춰 수업을 듣는 도중 KTA 한국군 교관들이 돌아가며 나한테 뭐라고 했다. 어디 갔다 왔냐부터 시작해서 네가 뭔데 그런 식으로 행동하냐는 말을 했다. 정작 내가 물어봤을 땐 대답도 잘 안 해줬으면서 당황스러웠다. 뭔 말을 하던지 변명으로 생각할 것이 뻔했기에 무조건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중사들이 계속 뭐라고 하는 게 보기 그랬는지 강사분께서 애가 아프다는데 적당히 하고 그냥 가는 게 어떻겠냐며 감싸주셨다.

  외진 은 15시에 KTA 한국군 교관 중 한 명의 개인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평택기지에서 가까운 평택 성모병원에 다녀왔다. 가기 전에 혹시 몰라 신분증과 카드를 함께 챙겨서 갔다. 병원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진단은 빨리 받을 수 있었다. 감기는 다행히도 심한 감기일 뿐이었고 소변검사는 다음 주에 나온다며 다시 오라고 알려줬다. 의사 선생님께는 감기가 빨리 나을만한 약을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마약 처방전을 주셨다. 뿅 가게 해준단 말을 하셨는데 처방전을 보고 이해했다. KTA에선 계속 아픈데 속상하고 서럽다.

  ELT 강의 시작 이후 매일 8시간씩 수업을 듣는다. 이번 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아파서 거의 강의를 못 들었는데 시험을 봐야 한다니 미칠 노릇이었다. 오늘은 군대 약어(Abstraction) 시험을 봤다. 논산 훈련소와 달리 개인 시간이 거의 없어서 잠을 쪼개가며 공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타작밖에 못해서 마음이 착잡했다. 앞으론 잠을 더 줄여서 시험을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밤마다 이불속에서 라이트 펜을 켠 채로 공부하고 있다.

  하루에 예정된 강의를 모두 마무리하고 강당으로 집합했다. 정신교육이 예정되어 있어서 그랬다. 처음에는 정보보안에 대한 설명들을 듣고 두 번째는 반공교육에 대해 들었다. 강의 진행은 군무원분이 진행하셨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지루하고 영양가 없는 얘기라서 졸면서 들었다. 훈련병들 모두 잠은 부족하고 활동은 많아서 그런지 대놓고 자는 인원들도 여럿 있었다. 강의시간 동안 잠깐이라도 자서 그런지 밤에 약어 시험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오전 PT를 마치고 방에서 씻으려는데 내 몸을 보고 놀랬다. 상의를 벗었는데 복근이 생겼다. 여기 있는 동안 살쪄서 컨디션이 저하되고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아마도 아파서 그랬나 보다. 복근이 생긴 것을 보고 카투사 체력훈련을 무사히 통과하지 않을까란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고작 1주일 만에 이런 변화가 생겼으니 말이다.

  어제보다 더 힘들게 단어를 공부하고 자서 그런지 오늘은 5개밖에 안 틀렸다. 아직 마지막 약어 시험이 남아서 이걸 어떻게 하면 잘 마무리를 할 수 있는지 강박관념에 빠졌다. ELT 강의에 있는 발표시간 중,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기업 현대의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을 소개했다. 그가 했던 말인 "시련은 있지만 실패는 없다"라는 말을 말하며 발표를 했다. KTA에서의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

  내일 있는 마지막 ELT 시험 때문에 불침번을 서는 동안에도 공부를 했다. 방에서 하는 것보다 좋았다. 20시 이후에는 반드시 소등을 해야 하는데 불침번을 서는 곳은 밝아서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었다. 불침번 시간을 마무리하고 방에 돌아와서도 약어 시험을 이어갔다. 부디 무사히 합격을 했으면 좋겠다. 체력이든 영어든 계속해서 테스트가 있어서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루빨리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

  처음으로 PT 시간에 야외에서 조깅을 했다. 주차장이 커서 주차장에서 달리기를 했다. 오늘 잘 못 뛸 줄 알았으나 15분 동안 스프린트를 해서 놀랬다.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지난 1주일 동안 안 좋았던 몸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아마 스트레스성이 아닐까 싶다. 운동 후엔 아침을 먹고 잠깐 시간이 남아서 숙소에서 오늘 있을 ELT 시험 준비를 했다. 공부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너무 적어서 만족할 만큼 공부를 못했다. 불안하다.

  오전 9시에 시작된 시험은 1시간 20분이 지난 뒤에 끝났다. 문제지를 처음 받자마자 아차 싶었다. 모르는 약어가 몇 개 보였다. 아는 게 거의 없어서 이번 시험은 어렵겠구나 싶었다. 시험이 끝나니 점심시간이라 밥을 먹고 강의실로 돌아왔다. ELT의 마지막 관문은 영어로 에세이(Essay) 작성이라 쓰고 발표를 했다. 발표만 하면 만점을 주는 식인 것 같다. 이후 시험 점수가 발표되었는데 3점 차이로 시험에서 떨어졌다.

미군 캐멀백


  재시험은 1주일 뒤에 예정되어 있어서 준비를 열심히 해야겠다.  저녁 PT를 신청해서 강당에서 추가적인 운동을 했다. 팔굽혀펴기의 압박 때문에 죽을 맛이다. 빡센 저녁PT를 마치고 논산 동기들과 함께 강당 밖에 있는 터프를 달렸다. 논산 때와 달리 PX를 이용할 수 없어서 저녁을 엄청 무리해서 먹는다. 배가 너무 불러서 달리기를 쉬엄쉬엄 했다. 만수를 채운 캐멀백을 매고도 잘 뛰었다. 몸 상태가 점점 최고조로 올라가고 있는 것 같다. 무사히 시험을 통과해 유급하지 않고 싶다.

  주말엔 오전 PT가 없어서 6시에 기상한다. 평일과 고작 2시간 차이인데 삶의 질이 다르다. 아침식사 후 침대에 눕지 말라는 미군 써전트(Sergent)의 말 때문에 장롱에 있던 요가매트를 꺼내어 바닥에서 1시간 정도 잤다. 푹 자고 나니 그동안 잡히지 않던 감기 기운도 많이 나아졌다. 깨보니 점심시간이 되어서 밥을 먹었다. 숙소로 돌아와선 또 팔 굽혀 펴기를 했다.

  평일과 달리 일정이 하나도 없는 주말이라 전부 개인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룸메이트끼리 이야기 꽃이 활짝 피었는데 대부분 어디 자대에 배치될 것인지가 공통된 화젯거리였다. 난 사실 팔굽혀펴기 때문에 고민이 많아서 다가오는 PT가 너무 걱정이다. 남들이 얘기하며 노는 동안 내 방구석에서 계속 팔 굽혀 펴기를 이어갔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논산 훈련소 때보다 몸에 근육이 잘 붙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꾸준히 하다 보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 같다.

  오전까진 어제와 같은 일정으로 하루를 보내고 점심을 먹고 나선 또 교회에 들렀다.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군것질 거리를 합법적으로 먹을수 있기에 참석했다. 교회에서 예배를 올렸다. 2주 차 예배를 진행하면 세례명과 영문 성경을 받을 수 있다고 그래서 방문했다. 교회에서 얘기를 막 듣던 중 졸아 버렸다. 눈을 뜨니 찐빵과 매실이 있어서 허겁지겁 먹었다.

  이번 주말에는 면접으로 보는 부대 리스트가 나왔다. 다들 소위 말하는 어디가 꿀 부대인지 나름 예측을 해가며 부대 지원 방법을 강구했다. 종이를 보며 모든 분대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했다. 아무래도 전투병 TO가 가장 많은 것 같았다. 내 눈에 들어왔던 곳은 공보실이었다. 일반적으로 공보실 있는 곳이 상급부대라 생각하여 지우너를 결심했다.

  주말엔 전화할 시간이 주어져서 가족과 친구들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내가 SL(분대장 훈련병)이라서 일반 훈련병들과 달리 통화를 훨씬 오래 했다. 30분 정도 했는데 유일하게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어서 이 시간이 가장 기다려졌다. 통화를 마치고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야외에서 운동을 못하게 했기에 아쉬운 대로 건물 1층부터 7층까지 오르락 내리락을 왕복 5회 했다. 캐멀백을 매고 하는 거라 좀 힘들었다. 운동을 바치고 4번째 불침번 준비를 했다. 앞으로 3번만 더 하면 KTA는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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