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 《냄새들》
우리 집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와 두 동생, 부모님, 조부모님이 함께 사는 일곱 식구 대가족이었다. 집에 어른이 있다 보니 하루에 세 끼, 꼬박꼬박 밥상이 차려졌다. 주말에는 이 밥상에 큰아버지 식구 넷이 추가됐다. 출근하는 부모님, 학교 가는 우리들이 평일 점심 한 끼는 밖에서 해결한다고 해도, 어쨌거나 우리 집에서는 하루 세 번의 식사가 차려졌다. 옛날 한옥 형태였던 당시 우리 집에는 ‘뒤란’이라고 부르는 집 뒤편 작은 정원 겸 텃밭이 있었다. 집의 한 면을 따라 가로로 길게 흙이 깔린 그곳에 엄마는 딸기도 심고 방울토마토도 심었다. 정원 끝에는 할머니의 장독대가 있었다. 일부는 외부에 그대로 드러나 눈비를 맞았고, 일부는 얇은 합판으로 만든 창고에 들어갔다. 그 창고에는 안에도 밖에도 꼬랑내가 진동하는 메주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하루는 학교 갔다 집에 왔더니 부엌에서 매니큐어에 휘발유를 섞은 듯한 이상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할머니는 소쿠리에 수북이 담긴 풀을 가리키며 ‘고수’라고 했다. 으, 무슨 나물 냄새가 이렇게도 지독할까? 가까이 가지 않아도 고수의 위용은 대단했다. 어느 날은 고소하고 눅진한 기름 냄새에 이끌려 부엌에 들어서니 할머니가 하얗고 쫀득한 감자전과 지금도 가끔 생각나면 사 먹곤 하는 수수부꾸미를 부치고 있었다. 할머니는 장독대 속 갖은 재료들로 매일매일 다양한 먹을거리를 만들어 냈다. 아는 게 적고 관심은 온통 딴 데 있던 어린 내 기억에도, 비빔밥을 해 먹을 때 참 맛있었던 다진 소고기가 들어간 맵지 않은 고추장, 사촌 언니가 놀러 왔다가 먹고 집에 돌아가 이모한테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떼썼다던 장조림, 해가 긴 어느 저녁에 돗자리 깐 마당에서 높은 하늘을 천장 삼아 먹었던 달착지근한 닭도리탕은 여전히 생생하다.
맞벌이하던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우리들의 저녁을 책임진 할머니가 있어 나는 꽤 오랫동안 다양한 식재료의 냄새가 풍겨오는 살아있는 부엌을 경험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막냇동생이 태어나고 그 무렵 할머니가 점점 노쇠해지면서 부엌의 주인은 서서히 엄마로 바뀌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전업 주부가 된 엄마가 너무나도 좋았다. 집에 가면 나와 내 남동생을 끔찍이도 예뻐해 준 할머니가 있어 행복했지만, 엄마는 또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이제는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귀여운 애기 동생과 엄마가 우리를 반겼고, 엄마의 밥 짓는 냄새가 부엌을 가득 메웠다.
급식실 없는 중학교에 입학한 나는 3년 동안 엄마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그때 처음으로 다른 집 엄마들의 집밥을 다양하게 체험하게 됐다. 나는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엄마의 오징어채와 하이라이스 소스를 부은 돈가스를 가장 좋아했다. 먹기 좋게 물에 불려 물엿과 고추장으로 매콤달콤하게 무친 오징어채는 김치를 먹지 않는 내겐 훌륭한 기본 반찬이었다. 그런데 도시락을 같이 먹는 친구 무리에서 ‘오징어채에서 매니큐어 냄새가 난다’는 평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엔 전혀 동의할 수 없었지만 ‘매니큐어 냄새’를 곱씹으며 음미해 본 오징어채에서는 은은하게 매니큐어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내가 이 얘기를 엄마에게 곧이곧대로 전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나는 그 후에도 줄곧 엄마의 매니큐어 오징어채 반찬을 맛있게 먹었으니까 말이다.
전기밥솥이 내뿜는 후끈한 밥 냄새 사이로 어느 날은 달큰한 카레 냄새, 어느 날은 고소한 김치 볶음 냄새가 자욱하던 부엌은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한 순간에 다른 세계 이야기가 되었다. 해준 음식들을 잘만 받아먹고 커서 그런가, 내가 뭐라도 썰 기세를 보이면 ‘저기 가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라며 내게서 부엌일을 쿨하게 면제해 준 엄마 덕분이었을까. 나는 요리에 영 흥미를 붙이지 못한 채로 몇 가지 나물 반찬과 냉동 동그랑땡 정도를 꾸역꾸역 부치는 선에서 몇 년을 답보했다.
그 후 더 자라나 서른 넘어 독립을 하면서 나는 예상대로 배달 앱의 노예가 되었다. 요리는 못해도 참 잘 먹고 지냈다. 가끔 집밥 같은 게 먹고 싶으면 ‘집밥’이라고 검색해서 나오는 음식들을 시켜 먹었다. 하지만 결코 그 집밥은 그 집밥일 수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일부러 더 많이 더 상세히 최대한 많은 추억을 동원하며 엄마 생각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엄마와 관련된 모든 기억을 꺼내 보고 또 꺼내 보았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추억들이 어느 날 갑자기 예리한 슬픔의 각으로 둔갑하지 못하도록, 언제든 어떤 기억을 떠올려도 울음이 터지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나를 고의적으로 엄마에게 노출시켰다. ‘기억의 철사장’ 훈련을 셀프로 했달까? 그러던 어느 저녁, 동네를 걷다 다른 집에서 새어 나온 뜨겁고 구수한 밥 냄새에 나는 무방비 상태로 엄마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화장품 냄새도 아니고, 섬유유연제 냄새도 아니고, 밥 짓는 냄새에 엄마를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냄새라고 굳이 생각하지도 않을 만큼 익숙하고 친숙해서, 그때는 매일매일 원 없이 맡을 수 있어서, 그래서 소중하고 자시고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그 냄새. 밥 짓는 냄새야 그동안에도 숱하게 맡아왔건만 그날은 어째서 그토록 사무치게 반가웠는지 모를 일이다. 밥솥과 가스레인지 화구 위에서 뽈뽈뽈 뿜어져 나오던 뽀얀 김들. 냄새라기보다는 그 뜨겁고 후끈한 온도로 기억되는, 일곱 식구가 복작대던 그때 그 시절이 밥 냄새를 타고 사방을 유영한다.
김수정의 《냄새들》을 읽고 냄새와 얽힌 저만의 이야기를 써보았어요. 좋은 책은 쓰고 말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