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일기

윤가은 《호호호》

by 좀머


좋아하는 게 참 많다는 작가는 ‘호불호’가 아닌 ‘호호호’의 태도로 자신이 애정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해하고 귀여운 말실수”, “아이들의 욕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 문방구”, “빵”, “대청소” 등의 최애 리스트를 보니 풉, 너무 작고 소중해서 웃음이 난다.



사회 초년생 시절, 친구에게 감사 일기를 써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며 하루에 감사한 일 딱 세 가지만 짧게 써보라는 말에, 나는 퇴근 후 집에 가는 광역버스 안에서 짤막한 감사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9700번 버스를 일빠로 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앉아서 퇴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남-신사 구간을 빨리 통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년 10월의 일기다. 이 시절 드문드문 썼던 감사 일기를 보면 “버스에 황금 자리(두 자리 모두 빈 좌석 또는 하차가 편한 자리)가 비어 있어서 감사하다”, “버스에 자리가 있어서 앉아서 간다, 감사하다” 등등 다소 일차원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버스버스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앉아서 가고 싶었나 보다. 버스에 자리가 있어 앉았으니 일기 쓸 여유가 생겼을 테고, 집까지 못해도 한 시간 반은 걸리는 경기도민에게 버스 빈자리가 지니는 의미는 또 남다르니, 버스 빈 자리에 모든 사고가 잠식된 사람같아도 어쩔 수가 없다.



감사 일기를 써보고 든 생각은 두 가지다.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감사해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 그리고 내가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이 의외로 일상의 아주 작은 포인트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꼬마가 안녕히 가시라며 인사할 때, “엄마엄마, 식자재 마트가 멋있어, 내가 멋있어?”라는 엉뚱한 질문을 던지던 꼬마 옆을 우연히 지날 때, 우는 이를 안아줄 수 있을 때, 커피가 너무 고소할 때, 마트 과일 코너에서 상큼한 자두 냄새가 진동할 때 나는 참 행복하고 감사했다. 좋아하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의 호호호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어떤 형이상학적 가치와 철학보다는 대개 내 일상을 물리적으로 점하고 있는 온갖 사소한 것들이 떠오르니 말이다.



좋아하는 게 뭐예요?

오늘 하루 특별히 감사한 일이 있다면요?



내가 나에게 묻는다. 지나간 하루들을 되돌아보고 기억을 선별한다. 의미의 다방면을 이리저리 짚어보고, 답을 완성해 가다 보면 행복이 참 별것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