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남궁인 《제법 안온한 날들》

by 좀머

짧고 긴 글들이 얼마간의 기간을 두고 쓰여지고 모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인이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여정 한 구간을 함께한 기분이다. 일상에서 수없이 많은 죽음을 마주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일까, 환자에게 지나치게 이입해 때로는 자기 자신마저 “부수기도” 하는 타고난 성정 때문일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누구도 항거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명백한 삶의 끝자락을 담담하게 전달하고 인정하는 것뿐이라지만, 그는 가슴으로 마음으로 매일을 목 놓아 우는 듯하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는 자신도 삶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죽음은 있다고.



요즘은 친구들을 만나면 나이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한 친구는 29살 12월 31일,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눈물로 30대를 맞이했다고 했고, 다른 친구는 불안했던 20대보다 30대인 지금이 훨씬 좋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31살과 33살의 느낌이 좋아 이 나이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마냥 어리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안다고 확신하기도 애매한 나이. 적어도 나의 31살과 33살은 그런 애매한 시공 속에서 나름의 꽃길이 펼쳐졌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크게 생각해본 적 없는 30대 중후반이 되면서부터였다. 이 나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늘 준비가 덜 된 채로 정신없이 새 나이를 맞이했고, 영양가 없는 푸념이 늘어갔다. 그러다 문득 나의 40대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긴 건 멋진 어른들을 많이 본 덕분이다. 푸념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물론 있었다.



작가는 나이 듦을 “실재하는 고통에 가까워”지는 과정, 그래서 “환자에게 더 깊이 공감하며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나이가 든다고 나와 내 삶이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가리란 법은 없다. 나이가 들어서 될 수 있는 건 딱 ‘성인’뿐, ‘성인’과 ‘어른’은 별개여야 하지 않을까?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그릇이 커지는 것, 미숙함과 불완전함에 관대할 수 있는 것, 그래서 또 하나의 불완전한 젊음이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미약한 도움이 되는 것. 지금은 나 스스로가 여전히 불완전한 젊음에 머물러 있지만,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이렇게나 원대한 포부를 가슴 한편에 품고 산다면 60대, 70대의 나도 문득 기다려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