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내가 남편과 결혼을 했을 땐, 내 마음이 너무 뜨거워서, 시어머니께 뭐든지 해 드려고 했었다.
나와 친언니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거진 둘이서 알아서 컸다.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조율해 내고, 거리를 적당히 지켜야 한다고 말해준 어른들은 없었다. 그래서, 내 사람이다 싶으면 내 마음을 다 표현해야 했고,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이든 나누고 싶어 했다. 안타깝게도, 그 마음은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니었다. 시어머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내 마음을 퍼준 만큼 나도 받고 싶었다.
여기서 잠깐 내가 최근에 해본 MBTI 검사를 짚고 넘어가 보자. 나는 전형적인 ISFJ이다. 인정한다.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아니다. 일단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는 성격이다.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애정과 시간을 줘야 하는지, 균형을 잡아 왔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어머니에게는 어느 정도가 맞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내겐 시어머니라는 존재가 처음이었으니.
처음 5년간은 시어머니와 친했다. 시어머니도 나를 좋아했다. 여담이지만, 처음 시어머니가 나를 만났을 때, 내 남편 (당시엔 남자친구)에게 나랑 당장 결혼하라고 했다고 한다. 가끔 우리 집에서 머물다 가실 땐, 용돈을 드리고 밥상을 차리는 등의 전형적인 한국인 며느리의 모습을 보여드렸다. 남편과 나 그리고 시어머니 셋이서 함께 데이트도 자주 나갔다. 함께 밥을 먹으며, 하하 호호하곤 했다. 시어머니와 보내는 시간은 즐거웠다. 물론 시어머니와 나 사이엔 언어적, 문화적, 세대 간 장벽도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좋아했다. 몇 번 서로가 좀 불편했던 상황들이 있긴 했다.
그러던 중 시누이와 내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내가 시댁모임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즈음 시어머니도 남자친구가 생기셔서, 먼 곳으로 이사를 가셨다. 시어머니를 만날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몇 년 뒤 시어머니가 남자친구와 헤어지셨고, 올해부터 우리 셋 (시어머니와 내 남편, 그리고 나)의 뜨거운 교류가 다시 시작되었다.
반년 동안의 내 화두는 '균형'이었다. 즉 사랑을 하되, 균형을 잘 잡자. 시어머니를 돕고 난 뒤, 내 마음속에 화와 짜증이 있다면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뜻. 시어머니는 내 엄마가 아니다. 시어머니가 내 어머니가 될 수 없다. 남편만 (또는 시댁식구만) 챙기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화를 내지 말자. 이것들을 되뇌는 반년이었다.
이제 나는 시어머니를 돌보면서도 적당히 거리를 둘 줄 아는 며느리가 되었다. 그냥 가만히 남편 옆에 있으면 콩고물이 떨어진다. 콩고물을 바라진 않았지만, 운 좋게 내게도 왔으니 감사히 받는다.
첫 번째 콩고물, 가끔 시어머니가 내 남편의 출근복을 다림질하신다. 남편의 옷장을 열다가 내 옷장도 열어서, 내 옷까지 깔끔하게 다려주신다. 세상에 이런 시어머니가 어디 있나?
두 번째 콩고물, 내 남편을 위해 요리를 하시다가, 미안하셨는지, 내가 먹을 수 있도록 고기를 빼고 요리를 하신다.
세 번째 콩고물, 내 남편에게 줄 선물을 사다가, 미안하셨는지 내 것도 조그마하게 하나 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