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어릴 적 동화는 있다.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해리포터와 함께였다.
해리포터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호그와트 대연회장에 우뚝 선 거대한 트리가 멋있었다.
천장까지 닿을 듯한 가지에 걸린 눈부신 별과 반짝이는 장식들, 그리고 마법처럼 내리는 눈발이 너무 좋았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넋을 잃었다.
어린시절 봤던 미국 영화에서도 가족들이 숲으로 가서 직접 나무를 베어 오는 장면이 나오면 가슴이 뛰었다.
하얀 눈밭 위에서 나무를 잘라 집으로 끌고 와서 휘향찬란한 전구를 두르고, 그 밑에는 항상 네모난 커다란 선물이 놓여있었다.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함부로 나무를 벨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 꿈은 조용히 잊혔다.
결혼 후 첫 크리스마스.
아내가 갑자기 말했다.
“우리도 트리 사자!”
나는 즉시 반대했다.
“집 좁아서 놓을 데도 없고, 180cm 넘는 거 놓으면 거실이 막히잖아.
걸어 다니다가 걸리적거리고, 치우는 것도 죽음이야.” 실용성 갑인 내가 잔뜩 이유를 댔다.
아내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매년 트리를 만들었어. 아빠가 트리 사오면 엄마, 동생, 나 셋이서 장식했지.
불 켜고 오너먼트 하나하나 걸 때마다 집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어.
그게...가족이구나 하는 느낌이었거든.”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어릴적에 나도 그랬었지...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난 후에 우리 집의 크리스마스는 치킨과 TV가 전부였다.
아내의 눈빛에 담긴 소중한 추억이 내 가슴을 살짝 흔들었다.
결국 트리를 샀다.
택배가 도착한 날, 상자를 열자마자 거대한 트리가 자신을 뽐내며 떡하니 누워있었다.
아내는 흥얼거리며 전구를 풀기 시작했고, 나는 “이걸 언제 치우나” 중얼거리면서도 슬쩍 손을 보탰다.
장식은 전쟁이었다.
아내가 “이 별은 꼭대기에!” 하기에 내가 사다리에 올라 걸었는데, 별이 자꾸 왼쪽으로 기울었다.
아내가 “조금만 오른쪽으로!” 하길래 일부러 더 왼쪽으로 돌려놓자 아내가 까르르 웃으며 배꼽을 잡았다.
아내는 급히 나를 조련하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가 있는 나의 엉덩이를 꼬집을 준비를 했다.
나는 사다리 위에서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오 마이갓!”을 외쳤다.
트리가 흔들릴 뻔한 순간, 내가 재빨리 나무를 붙잡으며 “우리 첫 트리가 쓰러지면 안 되잖아!” 하면서 순간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트리가 완성됐다.
불을 켜는 순간, 거짓말처럼 거실이 변했다.
수백 개의 작은 불빛이 반짝이며 벽에 은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따뜻한 향이 집 안 가득 퍼졌다.
아내가 내 팔을 툭 치며 말했다.
“예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 트리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었다.
우리 둘이 함께 웃고 떠들며 만든, 첫 번째 ‘우리 집의 따뜻한 마법’ 같았다.
그날 밤, 거실에 나란히 앉아 트리를 바라보는데 아내가 문득 말했다.
“내년엔 여기 눈 스프레이도 뿌리고, 꼭대기 별도 새로 사자. 그리고 우리 사진 찍자. 매년 한 장씩.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를 하나씩 여기에 걸어보자"
나는 대답 대신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어린 시절 꿈꿨던 그 장면이, 숲에서 나무를 베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 이 좁은 거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매년 12월이 되면 아내는 “트리 꺼낼 때 됐다”며 창고로 달려갈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귀찮아” 투정을 부리지만, 따뜻한 빛과 나무향이 퍼지는 순간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갈 것이다.
트리를 세우고 불을 켜면 우리 집은 잠시 호그와트가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여전히 넋을 잃고 앉아 있다.
마법의 기적은 영화에만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여정을 시작할 때 생긴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 여정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