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이를 만드는 법
12월 말, 손이 시릴 정도로 추운 저녁이었다.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어 아내와 함께 샤브샤브 전문점에 들어갔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향기의 달콤한 육수 냄새가 코를 채웠다.
벌써부터 주위 사람들의 '호로록'소리에 침을 삼키고, 아내를 바라보며 서로 긍정의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확인하고, 주문을 하려 손을 들었지만 종업원은 좀처럼 우리 쪽을 보지 않았다.
바쁜 시간이라 그런가 보다 싶어 기다렸다.
1분, 3분, 5분... 점점 불편해지는 마음을 삼키며 이제 손을 들며 내가 살짝 소리친 순간!
갑자기 옆 테이블에 앉아계신 할머니께서 고개를 살짝 돌리시더니 맑은 목소리로
“저기요~ 여기 주문 좀 받아주세요~”하고 불러주셨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부끄럽기도 하고, 한없이 고맙기도 했다.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마치 어릴 적 할머니가 ‘괜찮아, 내가 불러줄게’ 하는 듯한 그 작은 몸짓에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주문이 들어가고, 금세 테이블 위가 풍성해졌다.
먹음직스러운 고기와, 싱싱한 채소 바구니, 숙주 한가득.
'어서 빨리 끓어라'를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샤브샤브를 먹으러 집을 나서기 전 아내와 나는 TV프로그램인 ‘꼬꼬무’를 보고 나왔다.
MC들이 게스트들을 초대해서 역사적 사건이나 끔찍한 일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오늘 방송은 엄마가 친딸을 죽인 사건이었다.
엄마가 사이비 종교에 버금가는 한 여자를 맹신하여 그 여자가 시키는 대로 자기 친딸을 의자에 묶어놓고 때려죽인 실화였다.
화면이 나오는 동안 너무 적나라해서 손이 덜덜 떨렸다.
친엄마에게 끝내 아무 말도 못 하고 세상을 떠난 아이를 생각하며, 아내와 나는 끝내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을 삭히며, 물이 끓는 동안 나는 문득 할머니 쪽을 바라보았다.
할머니 옆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손녀가 앉아 있었다.
손녀는 핸드폰에 눈을 응시하면서 할머니가 채워주는 고기 가득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있었다.
그저 조용히 서로에게 익숙한 온기로 테이블을 채우고 있었다.
고기가 다 익으면 손녀의 앞 접시에 익은 고기를 조심스레 집으셨다.
상추 한 장 펴고,
밥 한 숟갈 살짝 얹고,
배추와 고기를 간장에 살짝 담그고,
그리고 아주 천천히 정성스레 쌈을 싸 주셨다.
“자, 아가야. 입 벌려.”
작은 입이 벌어지자
할머니는 웃으시며 그 커다란 쌈을 입안 가득 밀어 넣어주었다.
그 순간이었다.
방금 전까지 부글부글 끓던 내 마음이 어느새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주 멀리서 들리는 고요한 바람 소리처럼 잔잔하게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세상에는 분명 끔찍한 일들이 존재한다.
어머니가 자식을 버리고 해치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일도 있다.
그런데 바로 옆자리에서
한 할머니가 손녀의 입에 쌈을 넣어주고 있다.
그 단순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가 왜 그렇게 가슴 저미도록 벅찼는지. 왜 눈물이 핑 돌도록 따뜻했는지.
아마도 그건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아직 사랑은 여기 남아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자식을 버렸을지라도 바로 여기, 이 좁은 테이블 옆에서는 여전히 누군가를 이렇게 정성껏 조용히 챙기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할머니는 손녀가 천천히 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고기 한 점을 집어 드셨다.
나는 문득 내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고기 한 점을 집어 아내에게 무심코 건넸다.
아내는 고기와 육수를 먹으며 행복한 듯 연신 입을 조물조물거렸다.
누군가를 위해 쌈을 싸는 일이 이렇게 따뜻하고, 감동적일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그렇게 오늘도 배워간다.
배워가는 나의 조그만 기억 속에 따뜻한 온기가 널리 퍼져 그렇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