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악행은 시작된다.
건물 옥상에 만들어진 화단 난간 모서리에 앉아 밤이 점령한 시내를 내려다보는 건 꽤나 낭만적이다. 하나 둘 발광하고 있는 간판들이 크리스마스 전구를 연상케 한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자동차의 바퀴들. 쾌쾌한 매연으로 쌓인 도심 냄새. 내가 사랑하는 서울이다. 밤공기가 차다. 아내를 그렇게 두고 온 후 혼자 있게 되어 더 차갑게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 변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알 수 있다고 해도 알고 싶지 않다. 몸 안에 꿈틀 거리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강하게 만들고 있다. 용트름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어서 빨리 몸을 움직이라고 한다. 하루빨리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나로 말하자면 텔레비전에 나올 정도로 꽤나 멀끔한 얼굴을 갖고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기자가 될 정도로 명석한 머리를 갖고 있었고, 그래서 시궁창 같은 녹조물에 가서 취재를 했겠지만. 거기에서 만난 녹조에 빠진 지렁이 때문에 내가 이렇게 변하게 될 줄은 몰랐다.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온몸에서 피가 끓는 느낌이다. 어떻게 하면 찬 공기 속에 섞인 매연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
꼭대기층에 앉아 두 발을 벽에 툭툭 치면서 사람들을 하나 둘 골라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사람이 악해지는지는 보여주겠어.'
화단 바닥을 짚고 있던 손을 얼굴 앞으로 가져와 손바닥을 폈다. 기자의 손바닥은 피가 통하지 않는 사람처럼 새하얗다. 기자가 손바닥을 묘한 웃음을 지며 바라보자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조그마한 지렁이 한 마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생겼어. 잘 부탁한다.”
기자는 옥상에서 지켜보던 한 사람에게 지렁이를 던졌다.
“재밌겠는걸…. 저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악행을 해나가는지 기대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