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것이 아니다. 네가 원했던 것이다.
기자 손 위에 있던 조그마하고 분홍빛을 내던 지렁이가 공중으로 던져지자 녹색빛을 띄우고 주변에 어두운 연기를 풀럭였다 녹색으로 물드는 하늘을 한 명 두 명이 발견하더니 이 상황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 사이에 그도 있었다.
집의 에어컨이 고장난지 몇 일째, 더워서 짜증이 난다. 무더위가 기승인데 우리 집은 에어컨까지 고장 나니 더위를 이길 재간이 없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메리야스를 입고 빤쮸인지 반바지인지 모를 바지를 입고 이 더위를 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나의 여름 나기 패션이다. 더 이상의 옷을 걸치면 이 더위를 못 참을 것 같다. 더위를 못 참기도 하지만 이번 여름 더위는 유독 길다. 코 앞이 추석인데도 더위가 언제 풀 죽을지 모르겠다...
슈퍼마켓에 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어서 더위를 달래야겠다. 머릿속에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그려 넣어 놓고는 슈퍼에 갔다.
슈퍼 안으로 들어가는데 쉽지가 않다.
슈퍼에 자동문 좀 설치하지. ‘당기시오.’인지 ‘미시오.’인지 열리지도 않는 문을 열려니깐 이 더위에 짜증이 난다. 손에 힘주면 땀나는데... 손에 힘을 바짝 주고 문을 열었더니 칠판에 못 긁는 소리 같은 것이 나는 바람에 쇼핑하던 사람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보지 마. 보지 말라고…’
“좀 조용히 좀 들어오지. 유난이네.”
오늘따라 슈퍼 아줌마가 한마디 거든다. 나의 모습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을 또 건넸다.
“어휴 자기 머리는 감았어? 사람들 많이 오는데 이게 머리가 뭐야”
땀으로 젖은 건데 머리는 감았냐고 물어보는 아줌마의 시선이 나를 버러지 보는 듯하다 나를 더럽게 바라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무척 불쾌하다.
‘나를 그렇게 보지 말라고...’
‘나를 그렇게 보지 말라고...’
온몸이 경직되고 장이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배를 움켜잡고 많은 시선들이 느껴지는 여기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내가 무엇을 사러 여기 들어왔는지 잠시 생각을 놓쳤다.
‘맞아.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이 날 구원해 줄 거야.’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아이스크림 냉장고 쪽으로 갔다. 아이스크림을 고르던 아이와 아이 엄마가 나를 힐끔 보더니 냉장고 자리를 선뜻 비켜줬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자리는 비켜주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아이스크림만 집고 이 빌어먹은 슈퍼에서 나가야지.
‘나를 그렇게 보지 마...’
[누구가바] 아이스크림 껍질을 까며 슈퍼마켓을 나오는데 성급한 마음에 껍질 덜 벗겨진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었다. 껍질이 입술 끝에 닿아 찢어질 것처럼 까끌거렸지만 입 안에서는 시원함과 달콤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다른 감각들을 온전히 느끼며 하늘을 보는데 하늘이 유난히 녹색이다.
‘잉 녹색?’
‘녹색이라고?’
한 손으로 눈을 비벼 다시 하늘을 바라보는데 분명 녹색이다. 녹색빛을 띤다.
‘날이 너무 더워지니 하늘도 미쳐 날 뛰는구먼.’
입안에서 녹는 아이스크림이 시원하다. 잠깐의 달콤함을 입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의 세상은 녹지 않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이었으면 좋겠지만, 뒤꿈치가 다 닳고 낡은 슬리퍼는 나의 지금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툭”
입 안의 달콤함을 다 끝내지도 못했는데 머리에 무언가 떨어졌다.
새똥인가 보다. 제기랄.. 이렇게 운이 없어서야. 오른손으로 집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왼손으로 옮기고 빈 손으로 머리를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끈적이고 말캉한 무언가 머리 위에 떨어졌다.
‘이게 뭐야?’